프리다 칼로와 나의 관계 [김종미]
불구의 몸인 프리다 칼로가 낳은 아이들은 모두 사산되었다 사산된 프리다 칼로의 아이가 보고싶은 어느날 그녀의 사산된 아이를 내가 키우고 있다 자세히 보니 내가 키우고 있는 아이는 프리다 칼로다 내가 키우고 있는 프리다 칼로는 놀라운 속도로 성장하여 요즘은 잘 크지 않는 나를 키우고 있다 나는 그녀의 드라마틱한 모델이 되어 볼 거라며 갖가지 포즈를 취해 보지만 그녀는 언제나 자기자신의 자화상만 그린다 나는 그녀의 자화상 속에 들어가 노는 걸 즐기는데 그녀의 자화상 속에서 노는 것은 참 슬프기만 하다 나를 알뜰이 키우는 것은 정작 그 슬픔인지도 모른다 화첩을 넘기는 사람들이 요즘 내가 부쩍 자랐다고들 하니 말이다 하긴 내겐 멕시코의 태양이 너무 뜨거워 울면서 보낸 몇 장의 여름이 있다 풀어헤친 프리다 칼로의 머리카락에 내 목이 칭칭 감겨드는 여름이 있다 그 여름에 누군가는 내 이마에서 울고 있는 프리다 칼로를 보았다고 하는 사람을 만났다고도 했다
* 거의 할머니뻘 되는 멕시코의 여류화가 프리다 칼로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프리다'를 보았다.
보는 내내 욥기를 읽는듯한 심정으로 보았다.
한 인간이 주어진 환경에서 자기를 지키며 산다는 게 이렇듯 어려운 거란 생각이 든다.
자유분방한 것 같으면서도 자신의 사랑은 놓지 않으려는 한 여인의 삶을 들여다 본 셈이다.
공산주의자가 아니었더라면 더 유명한 화가 부부가 되었을텐데,하는 아쉬움이 든다.
자신의 처지를 그림으로 잘 묘사했다는 점에서 그림으로 시를 쓰는 시인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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