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저녁의 목수인 별 [함명춘]

JOOFEM 2012. 10. 17. 20:24

 

 

 

 

 

저녁의 목수인 별 [함명춘]

 

 




저녁의 목수인 별이 집을 짓는다
송글송글 맺인 이마의 땀방울을 뚝뚝 흘리며
거미처럼 착 달라붙은 채 제 몸 속의 황금빛 실을
뽑아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올린다

기둥 하나 세울 한 평의 흙도 없는 허공에
저렇게 아름다운 한 채 집을 지을 수 있다니

그러나 그 집은 입주를 희망하는 자의 눈빛 속에 지어진다
눈빛은 저녁의 목수가 집을 지을 수 있는 유일한 토지이다
눈빛이 진흙처럼 더 찰지게 뭉쳐져 있을수록
더욱 눈부시게 타오르는 모닥불처럼 방을 지펴놓는 별

저녁의 목수인 별이 또다시 집을 짓는다
입주를 희망하는 자의 귀에만 들려오는
저 뚝딱뚝딱 못 박는 소리
저 쓱싹쓱싹 톱질하는 소리

 

 

 

 

 

 

* 회사 책상에서 의자를 뒤로 돌리면 망가진 포도밭과 휴경지인 논이 내려다보인다.

저녁때에는 창틀에서 거미가 바쁘게 새로운 거미줄을 친다.

밤눈이 어두운 곤충들이 날다가 걸리면 쩝쩝거리며 먹으려는 속셈이 있어서다.

오히려 낮에는 몸을 둥그렇게 말아서 거미줄에 매달려 있다.

그게 꼭 낮에 보이는 별 같다.

저녁의 목수는 다름아닌 거미이고 그 놈이 꼭 별 같다는 생각이 든다.

큰거미 작은거미 모두 저녁만 되면 바쁘다.

똥꼬에서 하얀 실을 뽑아 식당을 만든다. 귀여운 목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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