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술꾼 [정희성]

JOOFEM 2012. 10. 13. 09:53

 

                                                                                              양달석,1958,농부들

 

 

 

 

 

술꾼 [정희성]

 

 

 

 

겨울에도 핫옷 한벌 없이

산동네 사는 막노동꾼 이씨

하루 벌어 하루 먹는다지만

식솔이 없어 홀가분하단다

술에 취해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며

낯선 사람 만나도 알은체하고

남의 술상 앞에서 입맛 다신다

술 먹을 돈 있으면 옷이나 사 입지

그게 무슨 꼴이냐고 혀를 차면

빨래해줄 사람도 없는 판에

속소캐나 놓으면 그만이지

겉소캐가 다 뭐냐고 웃어넘긴다

 

 

 

 

 

 

 

* 문주반생기에 보면 양주동박사가 피난길에 길모퉁이에서

술을 아주 맛있게 홀짝이는 사람을 보고 다가가 입맛을 다시니 술 한잔을 주더란다.

주성은 주성을 알아보는 게다.

나는 술을 좋아하지 않고, 마셔도 두잔을 넘어가면 금방 잠이 드는 체질이라

사회생활하는데에는 지장이 많은 편이다.

대신 반잔만 마셔도 얼굴이 금방 표가 나서 모르는 사람은 엄청 술을 많이 마신 걸로 착각해준다.

술 잘 마시는 사람이 부러워서 술 마시는 것도 연습을 해보았지만 아직까지도 잘 안된다.

막걸리 한사발 마시다 보면 넘어갔던 술이 도로 잔에 채워지든지

세숫대야에 부은 맥주를 마시다 마시다 결국은 뒤집어쓰곤 했다.(통과의례때 그랬다는 얘기다.)

술 좋아하는 사람은 산에 올라가서도 이 집 저 집 기웃거려 술을 얻어마신다.

우리나라는 술인심은 좋은 까닭이다.

식솔이 없어 외로운 사람이 술이라도 친구가 되어주니 그까짓 겉옷 따위가 무슨 소용이랴.

신선이 따로 없다.

주선(酒仙)이 곧 신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