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의지에 내맡긴다는 것은 궁극적인 실상 이외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진실에 내맡기는 것이다.
형상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은 지나간다. 상실은 집착에서 자유로워지게되는 기회이다.(호킨스박사)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이승훈]
가을비 오는 밤 김유정 문학촌 알 전등이 켜진 천막으로 밥 먹으러
갈 때 철원에서 온 정주신 시인이 천막 가리키며 "선생님. 저기 앉아
계세요. 제가 가지고 갈게요." 말하네. 난 천막 나무 의자에 앉고 옆
엔 고교시절 친구 국남이 앉는다. 잠시 후 몸이 마른 정 시인이 국밥
과 반찬을 들고 온다. 비 오는 밤 천막에 앉아 장터 국밥 먹고 숯불에
구운 돼지고기도 먹고 맥주도 마신다.
맥주 마시다 말고 "아무래도 안 되겠어. 늦게라도 서울로 가야겠
어." 국남에게 말하고 박민수 시인이 모는 차를 타고 우린 터미널에
내린다. 박 시인이 여덟시 표를 끊어준다. "시간이 남았군. 우리 호프
한 잔 하세." 우린 터미널 앞 허름한 호프집에 앉아 호프 마신다. "한
잔만 더 하지." "시간이 다 됐어." "그럼 다음 차 타면 돼. 언제 또 우리
가 이렇게 호프 마시겠나?" 말하며 호프 더 마시고 터미널에서 아홉
시 버스 탈 때 국남이가 담배 두 갑을 사준다.
* '물만이 아니라 모든 것은 멈추어 있지 않고 지나간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법정스님의 말씀이다.
어떤 광고 멘트중에 순간의 선택이 영원을 좌우한다고 했다.
모든 것은 지나가므로 영원한 것은 없지만 그 순간만은 늘 그 순간으로 존재하므로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영원한 것이 될 게다.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더 그렇다.
친구들을 자주 만난다 해도 이제 언제 두번 다시 만날지 알 수 없게 되었다.
헤어지기 아쉬워서 호프를 한 잔 더 하고 담배를 두 갑 사주는 것이
생의 마지막이 될수도 있지만 그 순간을 영원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빨간 코트를 입고 공항을 빠져나간 독일 간 외사촌누나
광화문 허름한 일식집에서 미국 가는 친구와 마신 소주
인철아, 우린 영원한 친구지! 일본으로 건너간 하루꼬
하룻밤 같이 자고 수석이라고 돌 몇 개 챙기고 단양 터미널에서 헤어진 일년 선배, 오 시인
군대 가면서 나에게 자작시를 읽어주고 간 김선배
군복무시절 전방부대까지 험한 길을 와준 후배
생일이 12월 18일이라고 챙겨달라던, 떠나간 애인, 얼굴은 잘 안 떠오르고 숫자만 남은......
.......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순간들이 모여 영롱한 그 무엇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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