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동행 [고영민]

JOOFEM 2013. 9. 27. 12:48

                                                                  끼고 살지 않고 싶은데 끼고 살아야 하는 것들이 있다.

 

 

 

 

 

동행 [고영민]

 

 

 

 

길가 돌멩이 하나를 골라

발로 차면서 왔다

저만치 차놓고 다가가 다시 멀리 차면서 왔다

먼 길을 한달음에 왔다

집에 당도하여

대문을 밀고 들어가려니

그 돌멩이

모난 눈으로 나를 멀끔히 쳐다본다

영문도 모른 채 내 발에 차여

끌려온 돌멩이 하나

책임 못 질 돌멩이를

집 앞까지 데려왔다

 

 

 

 

 

 

 

* 어릴 때 늘 형과 나는 비교의 대상이었다.

나는 길을 다녀도 그냥 다니지 않고 위험천만한 보도블럭 끝을 아슬아슬 다니거나

애꿎은 돌멩이를 걷어차면서 다녔다.

엄마로부터 꾸짖음을 듣는 게 신발이었다.

형은 얌전히 다녀서 이년을 신는데 나는 일년도 못 신는다는 거다.

그건 신발 뿐이 아니라 공책이며 교과서며 헤지는 정도가 분명히 달랐다.

고영민 시인도 그랬을까. 야구선수 고영민처럼 날래고 다이나믹한 걸음을 걸었을까.

운동화도 일찍 닳아 없어졌을까.

어릴 때 내가 하던 짓이 시로 나타나 머언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그 때 그 돌멩이는 지금 어디에 있을라나.

 

 

 

** 인생을 살면서 쓸모없는 것을 끼고 사는 경우가 많다.

한때 그것이 나를 사로잡아 소중한 것이 되기도 하는 까닭이다.

예컨대 우표수집에 열광했던 적이 있다.

사진첩 같은 곳에 얌전히 우표들을 넣어놓고 마치 그림 감상하듯이 들여다 보던 때,

평생 우표를 수집할 것 같았는데 세월이 지나고 나니 별 재미가 없어진......

화초 키우기, 사진 찍기, 애완동물 기르기, 자전거 타기, 볼링, 야구......

하다가 시들해지면 내가 멀끔히 쳐다보게 되는 것들,

왜 여기까지 끌고왔나, 이 쓸모없는 것들!

쓸모있는 것은 무엇이고 죽을 때까지 끌어안을 것은 무엇인가.

지금 끼고 사는 것들이 버림 받는 것들이 되지않게 처음과 끝이 같도록 정신을 유지해야 할 게다.

혹시 사람중에는 徹頭徹尾가 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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