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사 가는 길, 잠시 [신용목]
시흥에서 소사 가는 길, 잠시
신호에 걸려 버스가 멈췄을 때
건너 다방 유리에 내 얼굴이 비쳤다
내 얼굴 속에서 손톱을 다듬는, 앳된 여자
머리 위엔 기원이 있고 그 위엔
한 줄 비행기 지나간 흔적
햇살이 비듬처럼 내리는 오후,
차창에도 다방 풍경이 비쳤을 터이니
나도 그녀의 얼굴 속에 앉아
마른 표정을 다듬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당신과 나는, 겹쳐져 있었다
머리 위로 바둑돌이 놓여지고 그 위로
비행기가 지나가는 줄도 모르고
* 큰일이 나도 소소한 일상은 늘 그렇게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모르게 지나가기 일쑤다.
손톱은 나도 모르게 자라나서 또 깎아야할 때가 오고
이층 기원에서의 내기바둑이 누가 이기든 나랑은 상관 없는 일이고
그 위의 비행기엔 내가 타고 있는 게 아니어서
안전벨트를 매고 있는지, 책을 읽고 있는지 알 바가 아니다.
타인의 시선으로 나를 들여다 보아도
큰일은 아닌 소소한 일상속의 나로 느껴질 게다.
소사 지나는 길에 국민학교 때 뱀 잡아먹은 소사아저씨때문에
소풍 때마다 비가 왔다는 전설이 생각났던, 그 소소한 일상이 떠오른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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