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그리트氏의 점심 식사 [박은율]
스카이라운지 옆으로 그을린 고깃덩이 같은
한 덩어리 구름, 느리게 떠간다
이 한낮, 氏는 홀로 양손에 포크와 나이프를 쥐고 한 덩
이 고기를 화사하게 썰고 있다. 마주 앉은 상대도 없이, 핏
물 살짝 배어 나오는, 미디엄 레어. 위장은 먹기도 전에 묵
직한데 氏는 여전히 허기지다 식욕 없이 먹는 밥은 허기지
다 혼자 먹는 밥은 먹어도 먹어도 허기지다 우아한 미소
자연스런 표정 연출 그러나 텅 빈 노을빛 눈 어쩌면 氏는
구름 스테이크만 자시고도 허기지지 않았다는 선조들이
부러운 건지도 모른다
위대한 맛들은 모두 사라졌다 그래 빛나는 접시 위, 말
없는 혀처럼 달라붙은 한 조각 끈적거리는 아스팔트 맛에
서 초원의 풀내음을 맡으려 코를 벌름거린다 氏는, 고개 들
어 건너편 빌딩 위로 느리게 흘러가는 구름을 그리운 얼굴
인 양 오래도록 바라본다
* 삼십년전에 일본 출장을 가서 호텔에서 일본 방송을 보니
먹방이 참 많았다. 그런 걸 보면서, 일본사회가 각박하고 메마르고
뭔가에 허기져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요즘의 한국사회가 먹방 천지다. 그 옛날부터 먹었던 콩나물해장국조차
마치 엄청난 뭔가가 있는듯이 물고 뜯고 씹듯이 자세하게 방영한다.
유명한 요리사 타이틀을 걸고 요리를 보여주고 스토리를 엮어서
요리가 힐링의 대명사인 양 치장하고 있다.
심지어는 아이돌가수의 이름을 딴 라면도 잘 팔린다고 한다.
혼자 먹는 밥을 혼밥이라고 한다.
요즘 젊은이들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혼밥을 먹는 추세라고 한다.
편의점에서는 연예인들의 이름을 딴 도시락이 불티나게 팔리고
편의점 구석에서 이런 도시락을 먹는 이들이 늘고 있단다.
마음에 점 하나 찍는 게 이젠 구석에서 혼자 찍게 되었다는 게 현실이다.
먹방처럼 요리를 한다고 해도 허기진 배를 채울 수 없어
만든 음식을 버렸던 일본의 모습을 지금 우리도 닮아가고 있다.
쉐프에 열광하고 연예인에 열광하는 동안 우리는 점점 더 허기에 시달리게 된다.
氏는 홀로 고기를 화사하게 썰고 있다.
왜 시의 한 중간에 마침표를 찍었을까.
밑줄을 쫙 그은 것일까, 궁금증에 더 허기가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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