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칠백만원 [박형준]

JOOFEM 2016. 4. 27. 17:20







칠백만원 [박형준]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식구들 몰래 내게만

이불 속에 칠백만원을 넣어두셨다 하셨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이불 속에 꿰매두었다는 칠백만원이 생각났지

어머니는 돈을 늘 어딘가에 꿰매놓았지

대학등록금도 속곳에 꿰매고

시골에서 올라왔지

수명이 다한 형광등 불빛이 깜빡거리는 자취방에서

어머니는 꿰맨 속곳의 실을 풀면서

제대로 된 자식이 없다고 우셨지

어머니 기일에

이제 내가 이불에 꿰매놓은 칠백만원 얘기를

식구들에게 하며 운다네

어디로 갔을까 어머니가 이불 속에 꿰매놓은 칠백만원

내 사십줄의 마지막에

장가 밑천으로 어머니가 숨겨놓은 내 칠백만원

시골집 장롱을 다 뒤져도 나오지 않는

이불 속에서 슬프게 칙칙해져갈 만원짜리 칠백장





* 우리 부모세대는 돈을 어딘가에 잘 숨겨두곤 했다.

깜빡깜빡하는 나이가 되면 그걸 어디에 두었는지도 모르고

저세상으로 가기도 한다.

장롱에 둔 거라면 혹은 장판 밑에 깔아둔 거라면 자식들이 찾아내겠지만

그렇지 않은 건 찾을 방법이 없다.

어쩌면 다른 자식이 속 썩여 칠백만원을 써버렸는지도 모른다.

그걸 나만 아는 아들은 내꺼라고 장롱을 뒤지고 있다.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과

자식이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은 많이 다르다.

사랑은 내리사랑이 더 큰 법이다.

곧 어버이날이다.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이 더하여지는 날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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