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가 사라진 쪽 [고영민]
그림자가 생기는 이유는 뭘까
불붙은 개는 저쪽에서 달려올 테지
댓잎이 나오는 지금쯤
어린 장어는 강에 오르고
열세 명이나 들어가던 늙은 팽나무엔 연초록 새잎이 돋고
발목에 가락지를 채워 보낸 새는
다시 돌아오고
누가 개에게 불을 붙였나
달려도 달려도 불은 떨어지지 않고 개는
무작정 또, 달리고
나는 언제부터 지루해졌을까
차량정비소로 뛰어든 개는
결국 건물 한 동을 홀라당 다 태울 텐데
그사이 봄은 여름에게 저녁은
밤에게 몸을 내어주고
개가 전속력으로
개로부터 빠져나가는 저녁
아무리 도망쳐도 너를 위한 몸은 없다고
모든 그림자는 가장 길게
자신으로부터 빠져나오는데
나는 우두커니
개가 사라진 쪽을
* 누군가 어릴 적 개에 대한 추억은 있을 테다.
누린내를 없앤다고 몽둥이로 패고 털을 태운다고 그슬리고,
불붙은 개는 사력을 다해 출구를 향해 도망간다.
잔인한 장면을 보고난 어린 소년은 평생 개를 키우지도 않고
개를 먹지도 않는다.
아니, 개 음식을 파는 식당에서 파는 음식조차 눈길을 주기 싫다.
누가 잔인하게 불을 붙였을까.
개가 사라진 쪽은 출구가 맞을까.
개에게도 출구전략은 있었을까.
개를 먹겠다던 사람들은 그게 황당한 일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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