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생일 [김소연]

JOOFEM 2017. 3. 8. 16:23






생일 [김소연]




 

흰쌀이 익어 밥이 되는 기적을 기다린다 
식기를 가지런히 엎어 두고
물기가 마르길 기다리듯이 

푸릇한 것들의 꼭지를 따서 찬물에 헹군다 
비릿한 것들의 상처를 벌려 내장을 꺼낸다

이 방은 대합실의 구조를 갖고 있다 
한 정거장 한 정거장 파리함과 피곤함을 지나쳐 온 사람이
기다란 의자에 기다랗게 누워 구조를 완성한다 

슬픔을 슬퍼하는 사람이 오로지 슬퍼 보인다 
사람인 것에 지쳐가는 사람만이 오로지 사람다워 보인다
안식과 평화를 냉장고에서 꺼내 아침상을 차린다 

나쁜 일들을 쓰다듬어주던 
크나큰 두 손이 지붕 위에서 퍼드덕거릴 때
햇살이 집안을 만건곤하게 비출 때 

미역이 제 몸을 부풀려 국물을 만드는 기적을 
간장 냄새와 참기름 냄새가 돕고 있다


살점을 떼어낸 듯한 묵상이 
눈물처럼 밥상에 뚝뚝 떨어진다

쪼그리고 앉아 무릎을 모은다










* 삼월 칠일은 생일이었다.

아침부터 잠자리에 들기까지 많은 문자와 카톡으로 축하를 받았다.

제 생일은요, 양력이 아니고 음력이거든요,라고 일일이 말할 수 없어서

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답장을 주었다.

길게는 십년 넘게 관계를 하지 않던 친구도 카톡으로 축하해 주었다.

카톡이나 카스에 나의 정보가 노출되어 있나보다.

살아있기에 겪는 좋은 일이긴 하다.

살아있다는 건 기적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살아있는 날, 자신을 위해 밥상을 차린다면

그건 자존감 내지는 자존심을 세우는 일일 게다.

참기름에 미역을 볶고 물을 붓고 마늘과 국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하고

정갈하게 밥상을 차려 자신에게 생일상을 차려준다면

나는 나에게 얼마나 기쁘고 존재감이 느껴질 것인가.

생일은 자존심이 급상승하는 날이기에

음력으로 한번, 양력으로 또 한번 그리고 매일 지내는 게 좋겠다.

나, 내일도 생일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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