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간단합니다 [임지은]

JOOFEM 2017. 4. 20. 22:16








간단합니다 [임지은]






지금이 몇 시인지 알고 싶다면 시계를 보면 됩니다


나는 어디로도 갈 수 있고

어디로든 가지 않을 수도 있고

좀 더 복잡해질 수도 있습니다


함부로, 쉽게, 간단하게

지워버려도 의미가 변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부사를 사랑합니다


한없이 가벼운 자세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의지를 신뢰합니다


설탕을 빼 버리면 이 세계의 복숭아는 모두 상해버리고

통조림 안의 복숭아는 안전합니다


간단합니다

나는 얼마간 부사가 되어 있겠습니다


그건 검은 해변에 운동화를 놓고 오는 일

잘 닦인 유리창에 지문을 남기는 일

줄넘기 없이 수요일을 뛰어넘는 일


아프리카로는 갈 수 없지만

내일로 갈 수 있을 만큼 다리가 길어집니다


얼굴은 내 것이지만 타인의 영향 아래 있습니다

구름도 어쩔수 없는 날씨가 있습니다


저기 뒤뚱거리며 걸어가던 기분이 넘어집니다

펭귄처럼, 거꾸로, 각별하게








* 쉽죠,잉!이란 말도 있고

뭣이 중한디!라는 말도 있다.

간단하게 생각하면 간단한 것을 이리 재고 저리 재고 복잡다단하게 생각한다.

누군가 간단한 방법을 제시하면 오! 콜럼부스의 달걀이네,라고 말한다.

사실은 누구나 콜럼부스가 될 수 있는데

간단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이란 주어가 간단함을 간단치 않게 하므로

부사가 되어 나는,이 아닌 간단하게!라는 부사로 산다면

정말 간단하고 안전하게 살 게다.

미니멀 라이프! 오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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