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명선탕에서 [고훈실]

JOOFEM 2017. 9. 18. 07:39








명선탕에서 [고훈실]

 



 

 
느티나무 한그루
내 앞에 앉아 있다
어깨와 목선이 굵어 수령이
두꺼워 보인다
옆모습 낯설지 않아
자꾸 훔쳐본다
박수근의 여인
오늘은 느티나무로
목욕탕에 나앉았다
가지와 몸통 사이
구부정 접은 허리
평생 지우고 싶었을 흑빛 굴절,
박토를 만난 배경은 
좌판의 기름 전 함지박이다
 
오랜 우듬지에 새들
오지 않고 함지박 틈으로  
샤워기 물 쏟아지고
굴광성으로 남은 사지가, 휜다 
나무의 속내  
삐걱거렸을 걸, 
한 생의 무게는 한쪽으로만 기울어
타일 욕조 귀퉁이로 스러지는 괴목(槐木)  
옆에 앉은 여자가 부축하고
때수건  밀던  난
마티에르 같은 커튼을 밀치고 
느티나무를 건진다
팔에 기댄 뿌리
검은 부름켜가 온다



                        두레문학 인터넷카페에서 업어옴.






* 마티에르 기법으로 목욕탕을 들여다 본다. 오우, 횡재!ㅋㅋ

박수근화백의 그림은 증기가 뿌연 목욕탕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아낙네가 광주리에 생선을 담았는지 과일을 담았는지 명료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삶도, 역사도, 예술도 명료한 것은 없다.

우리 두뇌가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어찌보면 그냥 마티에르 기법으로 꿰뚫어보는게 나을 수 있겠다.

목욕탕은 선명하게 보이지 않기에 명선탕이라 이름지었을까.

오늘부터 선명하게 보이는 것조차 마티에르기법으로 흐리멍덩 보아야겠다. 


수령이 두꺼워 보이는 느티나무 한 그루, 덕스럽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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