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똘배나무 [문성해]

JOOFEM 2018. 7. 6. 16:17








똘배나무 [문성해]






심학산 정상의 외진 산비탈에

그 똘배나무가 있다


내가 울긋불긋한 등산복들을 피해

조용히 도시락을 펼치던 그 바윗가에

여전히 한 밑동에서 갈라진 줄기가 샴 쌍둥이처럼 맞붙어 있었다


내가 산 아래에서 쉬 흘려보낸

낮과 밤을 다 받아 모셔

탱자보다 더 작은 똘배들을 빼곡히 매달고 있었다


내가 몇 개의 방을 거치고

몇 개의 헛손질과 욕을 새로 익히는 동안

햇살과 비와 바람을 똘똘 뭉쳐 환으로 빚어낸 똘배나무여


시고 떫어서 날짐승도 따가지 않는다는

떨어질 때는 소리도 무게도 없는 똘배들


똘배나무는 누가 보든 말든 여지없이 똘배나무의 길을 가고

올해도 이 똘망똘망한 열매들은 저 혼자 열렸다 떨어지곤 하는 것이었다

정상에서만 유독 맺혔다 가는 것이었다


                               - 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 문학동네, 2016





* 나무는 누가 보든 말든 자기의 자리에서 자기의 생을 지키고 서 있다.

만뢰산 기슭에 보탑사라는 절이 있고

그 절 입구에는 사백년쯤 된 느티나무가 서 있다.

나는 그 절에 가는 걸 참 좋아한다.

절에는 사시사철 꽃이 피어 언제나 마음을 푸근하게 하기때문이다.

나는 그 나무를 나의 나무로 정하고 '주페나무'라 칭했다.

가끔 나를 아는 이들이 그 절을 찾아 주페나무를 보고

전화나 문자로 '주페나무' 보고 가요! 한다.

아는 척 하든 말든 주페나무는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무릇 우리네 인생도 나무와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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