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옛 사진첩 [이사라]

JOOFEM 2018. 7. 12. 08:04







옛 사진첩 [이사라]





그때는 몰랐어도 뒤늦게 알게 되는

순간의 세계가 있지


옛 사진첩을 꺼내보는 갈피에서 툭 떨어지는


어느 여름날

유행하던 꽃무늬 블라우스를 입고

정면을 향해 웃고 있는 그녀

그때는 그녀만 보였는데

지금 보니

클로즈업 된 상반신의 그녀 뒤로

원근법적으로 자그맣게 사람이 지나가네


그녀의 배경이 된 모르는 그 사람

그러나 보폭만은 성큼 큰 그 사람

그는 그의 앞만 보고 가네

그녀의 정면과는 또다른 그의 정면을 응시하는 걸

이제야 나는 보네


그때 그녀는 그를 모르고

지금도 그녀는 그를 알 도리가 없지만


우연히 그가 그때 거기를 지나갔듯

우연히 그녀가 뒤를 돌아보지 않은 것을


오랜 시간이 지나서

왜 이제야 다시 생각하는 것일까


옛 사진첩 갈피마다 피어나는 회상의 존재론


엷은 구름 같은 옛 사진첩

다시금 순간이 살아나는 세계가 있지


                  - 저녁이 쉽게 오는 사람에게, 문학동네, 2018






* 스무살 시사랑이 생파도 없이 지나가서일까.

아쉬운 마음에 상반기가 지나기 전에 번개모임을 가졌다.

사는 게 각박해진 탓도 있을 테지만

네명이 모였고 조촐하지만 옛 사진첩이라도 꺼낸 양

십년전 다사랑에서의 정모이야기를 했다.

也獸님의 첫 시집을 나누고

아름다운 세상님과 어린왕자가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가 결혼까지 했던 일,

운영자를 하다가 지금은 전혀 활동을 안하는 회원에 대한 얘기,

최근에 열심히 시를 올리는 회원에 대한 얘기,

부산회원들의 따뜻한 마음씨에 대한 얘기,

압해도에 사는 핫누님을 찾아가보자는 얘기 등등

훈훈한 대화를 나누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서 그때 스치듯 지나간 모든 회원들을 떠올리는 것도

의미있고 즐거운 일이다.

지금은 클릭할 여유가 없어서 뜸하더라도

남대문을 스쳐지나갈 때 아, 저게 남대문이었지! 하는

마음처럼 시사랑에 들러 한마디라도 남겨주면 옛 사진첩이

좀더 풍성하고 따뜻해지지 않을까 싶다.


플로우님이 멀리 부산에서 서울 결혼식에 왔다가

모임에 참석은 못했지만 서울역에서 잠깐 얼굴을 뵈었다.

비가와님이 함께 해주었으니 먼훗날 이 또한 사진첩에서 툭 떨어질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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