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가난한 가을 [노향림]

JOOFEM 2018. 11. 29. 08:59


                                                                                                         혼자 날아가려니 힘드네!






가난한 가을 [노향림]






가난한 새들은 더 추운 겨울로 가기 위해

배고픔을 먼저 새끼들에게 가르친다.

제 품속에 품고 날마다

물어다 주던 먹이를 끊고

대신 하늘을 나는 연습을 시킨다.

누렇게 풀들이 마른 고수부지엔 연습에 지친

새떼 군단들이 오종종 모여들고 머뭇대며

어미를 찾는 새끼들의 행렬속엔

어미새들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음울한 울음소리가

높은 빌딩 유리창에 몸 부딪쳐서 아찔하게

떨어지는 그 소리만이 가득하다.

행여 무리를 빠져나온 모질이들 방향없이

빈터에서라도 낙오되어 길 잃을까

아파트 단지에는 드문드문

따듯한 입김 어린 불빛이 켜지기 시작한다.

그 지시등 따라 창 밑까지 선회하다가

있는 힘 다해 지상에서 가장 멀리 치솟아 뜬

허공에 무수히 박힌 까만 충치 자국 같은 비행체들

캄캄한 하늘을 날며 멀리로 이사 가는

철새들이 보이는 가을날의 연속이다


                          - 시인수첩 2015 겨울호






* 진북선은 어디에 그어져 있나.

도북선은 지도에 그려져 있다.

새들은 무얼 따라 북쪽으로 가며 또 남쪽으로 내려오나.

몸속에 자북선이 본능으로 심어져 있나.

때만 되면 하나가 되어 무리지어 날아간다.

가끔 모질이들은 날아가지 못하고 철새가 아닌 텃새가 되어 낙오한다.

아마 새들에게도 사회복지를 전공한 새가 있어

함께 남아서 케어해주는 새가 분명 있을 게다.

떠나가는 새도 가난한 새요, 남아서 낙오한 새도 가난한 새다.


모질이라도 함께 아파하고 가난해 하며 어미새 같은 새들이

수호천사를 자처할 게 분명하다.

가난해도 가난하지 않은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되길 빈다.

힘내라, 새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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