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 [이현호]
내가 잘 있는지 궁금할 때면 너의 안부를 묻는다
"살아서 귀신이다." 너는 대답한다
여전히
거식증 환자가 음식을 대하듯 사람 눈빛을 마주보지 못하
는구나
그래도 그렇지, 살아있는 귀신이라니
생귀신(生鬼神)이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내고서야
내가 좀 살 것 같아진다
너의 빈손이 나의 빈손에게 안부를 돌려주고
"죽지 못해 산다." 나는 웃는다
아직도
삶을 과식해서 만성 체증을 달고 살아 명치 끝에 걸려 내
려가지 않는 이름들을 두드리며
살아있는 귀신과 죽은듯이 사는 사람의 대화는
사는 게 사는 게 아니고 죽는 게 죽는 게 아니라서
이도 저도 아니어서 이러나저러나 마찬가지여서
우리는 다른 친구의 안부를 묻고 또 다른 친구의 안부는
속에 묻는다, 귀신같이
연락 한 번 없는 친구는 우리의 자랑
서로의 무소식을 기다리며 우리는
안녕보다 먼저 안부를 묻는다
둘도 없는
친구니까
- 아름다웠던 사람의 이름은 혼자, 문학동네, 2018
* 첫눈이 오는 날 질퍽거리는 인사동을 거닐고 차 한 잔을 마시고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오래된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이름하여 정모이지만 새로 나올 친구들은 눈길을 달려오지 못했습니다.
새로 나오시겠다는 내이름은 R님은 진작에 사정이 있어 못오신다 하였고
완전 새얼굴이신 sunny님은 엄청 기대하고 있었는데 이사짐을 다 못푸신 관계로 끝내 못오셨습니다.
별희님이 가을저녁님을 모시고 오신다고 들었는데 갑자기 손주가 세상에 나오는 날이었는지
두분 모두 나오지 못하셨지요.
광주 사는 codoyo님도 눈길이라 오기가 어려워 포기했고 느티나무님은 아마 바쁘셨는지 연락이 안닿았습니다.
참가한 회원들은 시사랑친구들을 호명하며 즐거운 대화를 했습니다.
시인이 되었다는 길손님, 집배원은 아직 하고 계실까 소누렁님, 등단하고 통 소식이 없는 이솝님, 정모 날짜를 플로우님 의견에 따라야 했나 싶은, 시 잘 올리는 플로우님, 멀리 부산에서 맛좋은 막걸리를 찬조해주신 햇살화석님, 서툰 독수리타법으로 시올려 주시는 김명서님, 내년 봄정모에 나오겠다는 jwkim님, 하마터면 나올 수도 있었을 수선화님, 최연소 숲속의 소년님, 사탕님의 동생이었던 방랑자님, 핫누님에게 꼬깔콘으로 손가락에 끼워주던 파랑님, 회원 커플이 된 아름다운세상님과 그 남편(닉 생각 안남), 노래 가장 잘 부르는 핫누님, 월요시편지를 보내주시는 박제영시인님......야수님, 꽃지님, 금란초님, 시우님,홍수염님, 별빛님,하늘에님, 김은경시인님, 오시쁘상님, 신미균시인님, 비가와님, 유리 스님 등등 한명 한명 호명하며 훈훈한 대화를 하였습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믿으며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건강하시고 행복하시라고 안부를 묻는 시간이었습니다.
혹시 호명되었는데 주페의 기억력에 한계가 있어 누락된 회원들의 이름도 호명되었다는 걸 알아주시길 바랍니다.
1999년부터 들락거렸던 약 삼십만명. 그중에 지금은 이천명도 채 되지 않지만
이십년동안 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를 읽고 낭송하며 친교의 역사를 이어왔습니다.
혹시 사정이 여의치 않아 만나지 못하더라도 친구이기에 영원한 친구일 것입니다.
친구들에게 이 시를 읽어주고 싶어 정모에서 읽었습니다.
친구인 여러분들에게 가을의 끄트머리에 안부를 묻습니다. 안녕하시죠? ^^*
2018.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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