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변명 [장이지]

JOOFEM 2019. 2. 7. 21:42


                                                                                                                   심수근 그림







변명 [장이지]







6학년 7반 조회 시간.

교탁 뒤에서 선생은

우리 반에 텔레비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방송교육을 위해서라고.


그러고는

학급 임원들을 일어나게 했다.

너희들은 공부도 잘하고 임원이니까

부모님께 잘 말씀드려보라고.


싫은데요.

학생회장이 말했다.

어찌해볼 틈도 없이

선생의 구타가 이어졌다.


쉬는 시간.

선생은 타박상에 바르는 약을 가져왔다.

가난한 수재는 젖은 눈을 하고 상처를 맡겼다.


문제가 될까봐 그러는 줄 알았는데

선생은 부끄러웠으리라.

아이들에게 돈 이야길 하는 것이.


자신에게 실망해서

슬펐으리라.


나쁜 선생이 되고 나서 알게 된 슬픔.

얘들아, 이런 선생이어서

미안타.


                          - 레몬옐로, 문학동네, 2018








* 나는 국민학교 3학년때 어린이회장이었다.

엄마가 학교에 와야 했고 선생과도 만나야 했다.

그게 싫어서 그 이후 회장, 반장은 한번도 하지 않았다.

대학에서도 학회장은 하지 않았고 서클회장도 하지 않았다.

학회 총무, 서클 총무는 했다.

책임감의 무게도 싫었고 거기에 부응하는 금전적인 투자도 하기 싫었다.

총무는 책임은 없지만 전체를 쥐고 흔들 수 있는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그게 오히려 나은 게다.


직장에서도 1등은 하지 않는 게 좋다.

차장 진급한 해에 곧바로 팀장이 되어 성적이 좋아서 2년 연속 1등을 하고 보니

많은 시기와 질투가 뒤따라서 중간만 가기로 했다.

그게 오히려 편하다.


너희는 공부도 잘 하고 임원이니까...텔레비전을 사야된다!

아니다. 텔레비전을 안 사려고 공부도 적당히, 장(長)도 적당히가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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