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시들, 시들한 시들 [김승하]

JOOFEM 2019. 2. 5. 23:28








시들, 시들한 시들 [김승하]







실직하고 마누라 눈치 보며 쓰는 시

끊었다 피었다 하는 담배 같은 시

시들시들한 시를 쓰는 일은

시멘트 바닥처럼 딱딱한 동토에

깨알 같은 무씨를 심는 것

그러나 언젠가 다시 푸릇푸릇 돋는 무순처럼

따뜻한 봄날을 기다리며 쓰는 시

시가 밥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던 일

텃밭에 심어 놓은 푸성귀같이 시들시들한 시들,

나이 쉰도 안 되어 문지기나 되어 쓰는 시

나이 쉰이 다 되도록 시집 한 권 출간 못 한 시인의

주머니 속 휴지에 쓴 구겨진 시들

밥이 되지 못하는 시들


          - 저문 바다에 길을 물어, 달아실, 2018





* 딱딱한 동토에 무씨라도 심으면 언젠가 푸릇푸릇 돋는 무순이 된다!

밥이 되지 못한다지만 밥보다 더한 것이 되어

영혼과 정신을 맑게 헹구어 주고 구겨진 세상을 펴준다.

시사랑 카페가 이십년동안 꾸준히 시를 올리고 시를 밥처럼 먹었던 것은

우리의 영혼이, 정신이 맑게 헹구어 지고 구겨진 마음을 활짝 펴준 일이었다.

시사랑 카페의 한 젊은이가 이십년동안 드나들면서 시심을 키웠고

지금은 위기의 청소년을 상담하고 있단다.

시심이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이다.

부디 시들을 읽고 느끼고 세상에 나아가 헹구고 펴주는 일들을 해주길 빈다.

밥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밥그릇이 못된다는 것이지만

밥심은 되는 것이니 청춘이여, 밥심으로 세상을 평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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