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정말 부드럽다는 건 [이규리]

JOOFEM 2022. 12. 11. 11:51

 

 

 

 

 

정말 부드럽다는 건 [이규리]

 

 

 

 

토마토를 구워보면

구울수록 더 부드러워져서는

눈물이 많아져요

 

구운 토마토를 당신에게 주고 싶어요

 

이후의 모습들은 저렇게 무른 모습이 좋겠어요

 

생각들이 뜨거워지고

제 소리를 제가 알지 못하고

당신은 가방을 메고 종일 먼 곳을 헤매니

 

구운 토마토를 먹으면

눈가가 붉어져서는

문득 오래전 잊고 있던 내용을 

돌아다볼 듯해요

 

제 안의 독소를 빼내주시니

 

우리, 단단함에 대해 적을 것이 아니라

하염없이 무너지도록

 

힘쓸 일이 없도록

아침엔 토마토를 구워요

 

당신을 당신 바깥으로 놓아보아요

 

           - 당신은 첫눈입니까, 문학동네, 2020

 

 

 

 

 

* 케밥에는 양고기나 닭고기가 있고 구운 토마토를 하나 곁들여 준다.

굽지 않은 토마토는 단단함으로 무장되어 있어 케밥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토마토를 흐물거리도록 구워서 촉촉한 눈물 같은 것이 되어야

케밥을 한층 부드럽게 해서 맛있는 식사가 되게 한다.

 

우리가 사는 동안 단단하게 살 때는 단단해야 하고 

부드럽게 살 때는 촉촉하고 야들야들해야 한다.

어릴 때는 딱딱해도 다 씹어먹으면 되었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부드러운 것을 좋아한다.

사는 일이 다 그렇다.

무슨 일이 있어도 눈물 많고 부드럽고 독소 없이 살아야 잘 사는 게다.

사회는 점점 더 무질서해지고 독소가 많아지고 있어서

관용이라는 부드러움이 더 많아져야 한다.

 

힘쓸 일 없이 아침이면 토마토를 구워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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