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물점 [이수명]
사무실 문에 외출 중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잠시 그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띄엄띄엄 사람들이 지나갔다. 신호등이 계속 바뀌는 것을 바라보았다. 얼핏 꽃가루를 본 것 같았다. 꽃가루는 아주 천천히 떠다니는데 이상하게 잡을 수 없었다. 손가락을 빠져나갔다. 아주 천천히 옮겨 다니는데 어디로 옮겨 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눈앞에서 곧 보이지 않게 되었다. 그가 어디로 갔는지 물어보려고 옆집 철물점에 갔다가 멀티탭을 사기만 했다. 오늘 보지 못했는걸요. 멀티탭이 말하고 있었다. 주머니 속으로 들어간 햇빛이 어느덧 바스러졌다. 음악을 틀었다. 누군가 노래를 했다. 그 노래를 띄엄띄엄 따라 불렀다. 아주 천천히 걸어도 꽃가루를 찾아낼 수 없었다. 꽃가루는 지나가는 사람들에 붙지 않았다.
- 도시가스, 문학과지성사, 2022
* 한때, 철물점 시인과 블로그 친구가 되어 몇년을 왕래하였었다.
시인으로 등단해 등단식도 가고, 시집을 내어 출판기념회에도 가고
이렇게 저렇게 참 많이 왕래하였지만
철물점의 차가운 느낌처럼 마지막 방문에서는 다른 느낌을 알아챘다.
시를 쓰는 일도 없어졌고 철물점일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철물점 가는 일도 그래서 없어졌고
블로그에서 나누었던 대화와 사진 몇 장 이 남았을 뿐이다.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든 시를 쓰던 그 열정을 담아 잘 살아가길 바라고
다시 시를 쓰게 되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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