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番外에 대하여-律呂集80 [정진규]
문득 돌아보니 눈길이 가 닿지 않았던 것들이 홀앗이들이 널
려 있다 같은 으아리꽃 같은 것도 홀앗이로 피고 있는 으아리꽃
들이 많다 내팽겨쳐져 저물고 있다 차마 쳐다보기 힘들다 番外
다 나의 공책엔 等外라거나 列外라는 말이 적힌 대목이 없다
그런 것들보다 番外는 그래도 덜 외로운 편이다 다행이다 순에
는 들지 못해도 혼자서 뒤따라 아득히 가고 있다 상처는 보이지
않는다 아닌가? 속이 더 아리게 외로운가? 나도 番外는 된다
더러 순서 쪽에 가담된 적이 한두 번은 있었다 오늘은 홀앗이로
피고 있는 도라지꽃을 보았다 혼자된 그가 수건 쓰고 텃밭에 엎
드린 허리의 맨살이여, 番外로 살다보면 아득히 아름다울 때가
있다 가을 저녁 하늘에 혼자서 아득히 날고 있는 기러기 한 마
리를 볼 때가 있다
- 스미다, 김수우 엮음, 애지, 2016
* 브이자를 그리며 나란히 날아가는 철새들을 보면 멋지게 보인다.
하지만 열에서 빠져나와 홀로 힘겨운 날갯짓으로 날아가는 철새는
애처롭기도 하고 저러다 낙오가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된다.
결국 완전 열외가 되어 텃새로 변해 개천에서 물질을 하는 걸 보면
눈길을 한번 더 주기도 한다.
번외로 산다는 것이, 등외로 산다는 것이 잘못사는 것은 아닌데
주변의 시선은 속을 아리게 한다.
산속에서 수염도 깎지 않고 문명의 혜택도 받지 않고 살아가는 노인을
보면 홀앗이라고 열외라고 보아야 하나.
그렇진 않을 것이다.
등외가 되었든 열외가 되었든 번외가 되었든 사는 것은 다 같다.
환경이 그래서 그렇게 되었을 뿐이다.
홀로움은 환해진 외로움이라고 했던가.
홀앗이도 크게 다르지 않은 환해진 아름다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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