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목원 [권승섭]
버스를 기다린다 신호가 바뀌고 사람이 오가고
그동안 그를 만난다
어디를 가냐고
그가 묻는다
나무를 사러 간다고 대답한다
우리 집 마당의 이팝나무에 대해 그가 묻는다
잘 자란다고
나는 대답한다
그런데 또 나무를 심냐고 그가 묻는다
물음이 있는 동안 나는 어딘가 없었다
없음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 같다
무슨 나무를 살 것이냐고 그가 묻는다
내가 대답이 없자
나무는 어떻게 들고 올 것이냐고 묻는다
나는 여전히 말이 없다
먼 사람이 된다
초점이 향하는 곳에 나무가 있었다
잎사귀로는 헤아릴 수 없어서
기둥으로 그루를 세야 할 것들이
무수했다
다음에 나무를 함께 사러 가자고
그가 말한다
아마도 그 일은 없을 것이다
언젠가 그를 나무라 부른 적이 있었는데
다시금 지나가는 비슷한 얼굴의 나무는
- 202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 삼십년 다니던 회사의 마지막 4년은 그룹내 가장 작은 회사였다.
작고 아담한 공장을 인수해서 새로운 법인을 만들어 근무했다.
그 공장을 인수한 건 순전히 나무들 때문이었다.
메타세콰이어가 수십그루, 소나무가 백그루, 모과나무며, 감나무며, 이팝나무며
공장 담벼락엔 벚꽃나무가 둘러 서있었다.
철쭉도 천지이고 봄이면 벌을 가장 먼저 부르는 키작은 관목들.
내가 잘한 일중에 하나는 해마다 나무를 더 심은 것이었다.
해마다 열매를 더한다는 대추나무와 블루베리, 그리고 매실나무를 심었다.
후임한테 들으니 대추와 블루베리 따먹는 재미가 있다고 한다.
'참 잘 했어요!' 도장 하나 꾹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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