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조용한 여름 [김개미]

JOOFEM 2023. 8. 6. 10:20

곱창거리가 생길 줄 몰랐던 커피집. 드립커피 마시러 자주 갔었던 곳이다.

 

 

 

 

 

조용한 여름 [김개미]

 

 

 

 

어려서 잠에 빠지며 하던 상상처럼

내가 투명해진 걸까

 

들쥐는 어째서 태양이 이글거리는 대낮에

눈알을 닦으며 사람의 길을 가로질러가고

머리가 커다란 해바라기는 어째서

태양에 몰두하지 않고 바닥을 살피는 걸까

 

시계를 잃어버리고 어쩔 줄 모르는 것이

나만은 아닌 모양이다

 

누가 음악을 들으며 지나간다

듣고 싶지 않은데 너무 잘 들린다

아는 노래인데 제목을 모르겠다

 

내가 아는 것은 대부분 이런 식이다

안다고 하기에는 모르는 부분이 중요하다

 

저기 이름을 모르는 아는 사람이

개를 데리고 간다

나뭇가지 그림자가 그와 개의 몸을 훑는다

 

가렵다

겨드랑이도 가렵고 발가락도 가렵고

귓구멍도 가렵고 눈알도 가렵다

다행이다 가려워서

몸은 긁으면 되니까

더러 나인 건 분명한데 어딘지 모르는 데가 가려운데

그때 가려움에서 나를 구할 수 있는 자는 내가 아니다

그는 어디서 무엇을 긁고 있기에

여태 나에게 오지 않는 걸까

 

죽은 것도 아니고

좀비도 아니지만

또 살아났으니

오늘은 집으로 돌아가 조용히 있어보자

젖은 귀를 창문에 걸어 말리며

가슴에 손을 올리고 미라처럼 누워 있어보자

 

도무지 근원을 알 수 없는 나의 태풍이

도망칠 수 없을 만큼 가까이 와 있다

 

 

                   - 작은 신, 문학동네, 2023

 

 

 

 

 

 

 

 

* 어제의 퇴근시간은 의외였다.

불금이기에 도로가 꽉 막힐 줄 알았는데 뻥 뚫려서다.

그새 일찍 조퇴해서 미리미리 동해바다로 튀었나보다.

아니면 나처럼 오갈데가 없어 일찍 조퇴해서 집에서 조용히 있는 걸까.

 

아뭏든 요란하지 않게 조용한 여름을 지내길 바래본다. 

대학나온 옥수수 깨물어먹으며 한 알 한 알 음미하면서

나만의 시간을 보내보자.

야, 여름이다!

 

 

** 막내는 곱창도 좋아하고 육회비빔밥도 좋아한다.

조용한 여름중 하루를 막내에게 할애하느라 가까운 예산을 찾았다.

백종원이 조성한 예산시장(전에는 빈 상가가 많아서 으시시했던.)과

새로 삽교에 곱창거리를 만들었다길래 예산시장과 삽교를 갔다.

내가 자주 가던, 삽교 어죽집 앞에 국밥집이 없어지고 곱창집들이 들어섰다.

그래도 오래된 집이 낫겠지,하고 들어간 집은 손님이 꽉 찼다.

이 뜨거운 여름에도 땀 흘리며 곱창전골을 먹고 있다.

내가 곱창은 안먹는다는 걸 고려해 막내가 곱창전골을 시켰다.

두 점은 먹어야지 했는데 워낙 곱창을 많이 넣어서 일곱점은 먹은 듯하다.

국물은 맛있어서 밥 한 그릇 뚝딱했다.

주차장앞에 한옥집을 개조해 커피집을 하는 곳에서 냉커피를 마셨다.

이 집도 내가 자주 가던 집인데 전에는 손님이 서너 테이블이었는데 거의 꽉 차고

종업원도 한 명 쓰고 있었다. 백종원에게 감사해야할 테다.

예당저수지에 가서 '이앙'이라는 커피집에서 냉커피 한잔 더하고

황새공원에 가서 황새 구경을 했다.

익조중의 익조인 황새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고 점점 사라지는 추세여서 

새장에 갖힌 황새를 코앞에서 보면서 제발 많아지길 바랬다.

슬슬 꺾이는 더위에 광시 한우마을에 가서 육회비빔밥, 정말 맛있어서 

막내가 엄지척!

예산시장에서 기념으로 약과 한 상자 들고 왔다. 

조용한 여름을 그렇게 보냈다.

'시와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납작복숭아 [이은규]  (0) 2023.08.10
통영 [황인찬]  (0) 2023.08.09
조율 [안미옥]  (0) 2023.08.05
비파나무가 켜지는 여름 [이혜미]  (0) 2023.08.03
적화(摘花)* - 아오리가 있던 여름 [정현우]  (0) 2023.08.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