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원산 [유진목]

JOOFEM 2023. 9. 13. 08:58

소설가 이호철의 고향, 원산

 

 

 

 

 

원산 [유진목]

 

 

 

 

원산으로 가는 열차에 올라

혼자서 잠이 들었다

 

한 사람은 지키지 않을 약속을 하고

한 사람은 약속을 따르는 것처럼

 

원산으로 가는 열차는 가득 차고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어디로든 이동하는 동안에는 잠이 쏟아진다

창밖에는 눈이 쏟아지는 것처럼

 

깨어나면 낯선 이가 옆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원산으로 가요

거기서 살아요

 

창문이 덜컹이는 방에 나란히 누워

한 사람이 천장을 가리키면

한 사람이 천장을 보는 것처럼

 

깨어나면 또 다른 이가 옆에 앉아 창에 기대어 졸고 있다

 

플랫폼에는 이불을 닮은 눈이 소복이 쌓여 있어

저기 저 열차는 바람에 흔들리는 창문 같지

 

이불은 차고

베개는 낮고

 

어느새 나타난 역무원이 호각을 불어

새들이 멀리 흩어지는 것처럼

 

나는 원산행 열차에 올라

잠이 들었다.

 

 

              - 작가의 탄생, 민음사, 2020

 

 

 

 

 

* 국민학교 다닐 때 선생님이 원산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다.

명사십리라는 해수욕장이 있고 우리나라에서 가장 멋있는 곳이라고 했다.

하지만 갈 수 없는 곳.

예전에는 북한지도를 볼 수 없었지만

스마트폰으로 보니 금강산에서 원산까지 고속도로가 깔려있다.

만약 북한이 개방만 한다면 남과 북이 서로 오갈 수 있는 날이 올 게다.

지금 시인은 꿈을 꾸듯 원산행 열차에 올라탄 것이니

그 꿈이 실현될 날을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