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맨홀 [정재율]

JOOFEM 2024. 2. 19. 15:14

맨홀이야? 블랙홀이야?

 

 

 

 

 

맨홀 [정재율]

 

 

 

 

  소란스럽다​

 

  세수를 마치고 나왔는데 수건에서 유칼립투스 냄새가 난다 창밖엔 아이들이 모여 앉아 무언가를 보고 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자세히 보니 개미굴을 보고 있다 큰 개미들이 줄지어 지나간다 아이들 사이로 지나간다 아이들은 어떻게 할 줄 몰라 제자리에 멈춰 서 있다 먹을 것을 주고 싶은데 개미는 너무 작고 차는 너무 위험하게 달린다

 

  조용히 해야 해

 

  숨을 죽인 채로 한 명이 말하자 작은 목소리로 모두가 그렇게 말한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고 마지막 개미가 구멍에 들어갈 때까지 아이들은 조용히 바라만 보고 있다 아이들은 책가방을 들어 조심 조심 이동하고 코너를 돌 때까지 계속해서 이쪽을 뒤돌아본다

 

  아이들이 다 사라지면

  어느새 거리는 조용해지고

 

  밤이 되자 밖에서 쇠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온다 맨홀 뚜껑이 열려 있다 그 속으로 긴 케이블 하나가 들어가고 사람들도 하나둘씩 따라 들어간다 이렇게나 깊게 들어갈 수 있나 싶지만 아이들이 개미를 바라보았던 것처럼 나는 맨홀에 들어간 사람들을 한참동안 바라본다

 

  그들이 안전하게 나올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언제나 구멍 안쪽은 위험천만해 보이고 안전모를 쓴 사람들은 쉽게 잠들지 않는다

 

 

                   - 온다는 믿음, 현대문학, 2023

 

 

 

 

 

 

* 맨홀은 우수관과 오수관으로 되어있다.

오수관은 더러운 편이고 우수관은 그나마 깨끗한 편이다.

가끔 열린 우수관으로 고양이가 들어갔다가 빠져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들어가긴 쉬워도 나오긴 어려우니 안들어가야 한다.

 

비가 많이 올 때에도 사람이 맨홀에 빠지면 나올 수 없으므로 조심해야 한다.

위험천만하다.

 

궁금한 것은 우수관길과 오수관길이 도면으로 되어있는가이다.

안전모를 쓰고 들어간 사람이 어디로 흘러갔는지 알고 싶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