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요정과 술 마시기 [김복희]

JOOFEM 2024. 12. 7. 09:35

알베르 메냥의 '녹색 뮤즈'

 

 

 

 

요정과 술 마시기 [김복희]

 

 

 

 

술은 인간 영혼의 윤기입니다

 

내 말은 아니다 요정의 말이다

취한 요정과는 마음 전혀 통하지 않지만

요정의 집 알 수 없고

내 집에 데려가도 되는 걸까

요정을 믿을 수 없고

 

요정인데

요정이잖아요

설마하니 요정이

 

하지만 나는 요정들이 하는 고약한 일들을 안다

이를테면 거울 요정이라든가 램프 요정이라든가

 

요정이 못하는 일들도 안다

 

누군가를 죽일 수 없다

누군가를 사랑에 빠지게 할 수 없다

누군가를 되살릴 수 없다

 

나는 취한 요정을 쿡쿡 찔러

소원을 들어달라고 한다

 

귓속말로 세 가지나 말했다

 

요정은 취했고

셋 다 같은 소원 아니냐고 한다

소원은 됐고

자꾸 자신이 어떻게 보이느냐 묻는다

 

 

                 - 오늘부터 일일,난다, 2024

 

 

 

 

 

 

* 술은 인간의 영혼을 맑지 않게 하는 음료라고 믿었다.

술과 담배를 신으로 여기던 아버지가 오십 초반에 신을 따라가셨다.

그래서 우리 형제는 술과 담배를 일체 하지 않았지만

형은 아직도 술과 담배를 모르고 산다.

나는 일단 술 권하는 대학을 다녀서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셨다.

직장생활하면서 직위 높은 분이 따라주는 술은 마셔야 했지만

두 잔을 마시면 영혼이 가출하곤 했다.

학교 다닐 때 화랑로를 한시간 걷는 일은 두가지 이유때문이다.

시를 쓰려고 걷는 일과 술을 마셔서 깨기 위해, 경우에 따라서는 토하려고.

한시간만에 집에 도착하면 얼추 술은 깨게 되어 부모님은 내가 술 마신지 모른다.

지금도 이렇게 저렇게 들어온 술이 많지만

나에게는 소용 없는 것들이라 이사갈 때마다 도와준 직장 동료들에게 비싼 술들을 값없이 내주었다.

아뭏든 그래서 지금은 술마신지 오만년은 되었나 싶다.

술과 담배는 영혼을 망가뜨리는, 일종의 마약이다.

입술과 멀리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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