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이모들 [김명인]

JOOFEM 2024. 12. 2. 21:31

조영남 그림

 

 

 

 

 

이모들 [김명인]

 

 

 

 

세상 모든 할머니의 보퉁이에는

오롯하게 꾸려놓은 스무 살

싱싱한 이모가 있다

치매를 둘러 패는 화투 한 판

거기 끼어서도 저 이모

빨리 끌러보라고 성화다

가슴 어디에 전대로 싸맨 세월이 남았는지

우세스러워 한 번도 내뱉지 못한

농담조차 녹슨 작두로 잘라 보이며

뜬금없이 불쑥 섞는

스무 살 칼칼한 웃음소리들

해묵은 탄금이라 언제

줄 끊어지더라도 하릴없지만

아직은 쨍쨍한 늦가을 꽃길

산들거리기 한창이다

 

 

                - 오늘은 진행이 빠르다, 문학과지성사, 2023

 

 

 

 

 

 

 

* 어머니는 위로 셋, 아래로 하나

이모들이 많아서 잘 모여 노는 걸 좋아했다.

어머니가 그중 두뇌회전이 빨라서  큰이모, 작은이모가

셈이 안될 때 삼십원 주면 돼, 오십원 줘야 해! 심판관처럼 정리를 해주곤 했다.

이모들은 깔깔깔 웃으며 야, 넌 그것도 셈이 안되냐?

쫑코도 주며 십원짜리 동전을 놓고 화투판을 벌이곤 했다.

그렇게 모여 칼국수도 해먹고 수제비도 떠먹고 즐거웁더니

지금은 가장 나이 많은 큰이모만 남고 모두 하늘나라에서 화투판을 벌이고 있다.

하늘 가는 길은 순서라는 게 없나보다.

어머니가 지금도 심판관처럼 얼마를 줘야하는지 정리해주고 계실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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