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참 무식하시다[박제영]
어머니는 무식하시다
초등학교도 다 채우지 못했으니 한글 쓰는 일조차 어눌하시다 아들이 시 쓴답시고 어쩌다 시를 보여
드리면 당최 이게 몬 말인지 모르겠네 하신다 당연하다
어머니는 참 억척이시다
열일곱 살, 쌀 두 가마에 민며느리로 팔려와서, 말이 며느리지 종살이 3년 하고서야 겨우 종년 신세는 면하셨지
만, 시집도 가난하기는 매한가지요, 시어미 청상과부라 시집살이는 또 얼마나 매웠을까, 그래저래 직업군인인
남편 따라 서울 와서 남의 집살이 시다살이 파출부살이 수십년 이골 붙여 자식 셋 대학 보내고 시집 장가 보냈
으니, 환갑 넘어서도 저리 억척이시다 이번에 내 시집 나왔구만 하면, 이눔아 시가 밥인겨 돈인겨 니 처자식
제대로 먹여 살리고는 있는겨 하신다 당연하다
무식하고 억척스런 어머니가 내 모국어이다 그 무식한 말들, 억척스런 말들이 내 시의 모국어다 당연하다
지금까지 써 온 수백편 시들을 전부 모아 밤새 체를 쳤다 바람같은 말들, 모래같은 말들, 다 빠져나가고 오롯
이 어, 머, 니,만 남았다 당연하다
* 대개 어머니는 자식들보다는 무식한 편이고 대신 위대함을 가졌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초등학교나 중학교, 잘 해야 그저 고등학교를 나왔고 아주 어쩌다 희귀하게 대학을 나왔을 테다.
자식들은 거의가 대학을 나오고 배우는 것도 신학문이요, 컴퓨터다, 영어다, 해서 어머니를 능가할 것이다.
부모와 자식간에도 경쟁심은 있는 것이어서 보이지 않게 경쟁관계이지만 자식은 부모를 넘어설 수 없다.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부모가 가진 시간적 우월감, 즉 경험을 무시할 수 없기에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진리 혹은 진실을
뛰어넘을 수 없는 까닭이다.
무식하지만 위대한 어머니가 그래서 경쟁할 수 없는 우월적 위치에 있다.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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