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새끼[김선태]
가난한 선원들이 모여사는 목포 온금동에는 조금새끼라는 말
이 있지요. 조금 물때에 밴 새끼라는 뜻이지요. 조금은 바닷물
이 조금밖에 나지 않아 선원들이 출어를 포기하는 때이지요. 모
처럼 집에 돌아와 쉬면서 할일이 무엇이겠는지요? 그래서 조금
은 집집마다 애를 갖는 물때이기도 하지요. 그렇게 해서 뱃속에
들어선 녀석들이 열 달 후 밖으로 나오니 다들 조금새끼가 아니
고 무엇입니까? 이 한꺼번에 태어난 녀석들은 훗날 아비의 업을
이어 풍랑과 싸우다 다시 한꺼번에 바다에 묻힙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함께인 셈이지요. 하여, 지금도 이 언덕배기 달동네
에는 생일도 함께 쇠고 제사도 함께 지내는 집이 많습니다. 그런
데 조금새끼 조금새끼 하고 발음하면 웃음이 나오다가도 금세
눈물이 나는 건 왜일가요? 도대체 이 꾀죄죄하고 소금기 묻은
말이 자꾸만 서럽도록 아름다워지는 건 왜일까요? 아무래도 그
건 예나 지금이나 이 한마디 속에 온금동 사람들의 운명이 죄다
들어 있기 때문 아니겠는지요.
* 모처럼 쉬면서 할일은 애를 갖는 일이다.
조금새끼같은 베이비가 태어나는 때가 바캉스철과 크리스마스이브이다.
때가 때이니만큼 아이를 갖는 거다.
지금 바다에 나가보라.
벌거벗은 몸들이 얼마나 많은지.
여자들은 에스라인에 쭉쭉방빵빵이라 하고
남자들은 언제 복근에 임금왕자를 새겼는지, 혹은 그렸는지 근육질이라 하고
그래서 그렇고 그런 사람들이 만나 할일은 조금새끼를 갖는 일이다.
모터보트에 여자 한명 싣고 물보라 일으키며 바다를 질주해 보라.
분명 여자, 괴성을 지르고 조금새끼 하나 가져줄 거다.
모처럼 쉬는 짧은 순간에 토끼처럼 사랑을 나누는 까닭이다.
조금새끼같은 토끼새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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