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분 동안[최정례]
3분 동안 못할 일이 뭐야
기습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지
다리가 끊어지고
백화점이 무너지고
한 나라를 이룰 수도 있지
그런데
이봐
먼지 낀 베란다에 널린
양말들, 바지와 잠바들
접힌 채 말라가는
수치와 망각들
뭐하는 거야
저것 봐
날아가는 돌
겨드랑이에서
재빨리 펼쳐드는 날개를
저 날개 접히기 전에
어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지
도장을 찍고
악수를 청하고
한 나라를 이루어야지
비행기가 떨어지고
강물이 갇히기 전에
식탁 위에 모래가 켜로 앉기 전에
찬장 밑에 잠든 바퀴벌레도 깨워야지
서둘러 겨드랑이에
새파란 날개를 달아야지
*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어떤 친구의 말로는 3분간에 걸쳐 자기 삶이 파노라마처럼 눈 앞을 스쳐간다고 했다.
교통사고로 정신을 잃어가면서도 3분간에 걸쳐 지나온 삶이 파노라마처럼 눈 앞에 펼쳐진다고 한다.
3분이면 한 생이 지나가는 충분한 시간인가 보다.
성인이 되고 어느덧 삼십년이 흘렀다.
정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어찌어찌 하다보니 3분 동안에 그 일들이 다 일어난 것 같다.
벌써 두 아이가 성인이 다 되어 나를 3분 뒤로 밀어내고 있다.
3분 내에 새파란 날개 달지도 못했는데 3분이 휙 지나간 셈이다.
남은 3분 혹은 2분, 아니면 1분이 얼어붙은 수치와 망각을 해동시킬 수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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