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3분 동안[최정례]

JOOFEM 2009. 10. 20. 22:04

 

 

 

 

 

 

 

 

 

 

 

 

 

 

 

 

 

 

 

 

 

 

 

 

 

 

 

 

 

 

 

 

 

 

3분 동안[최정례]

 

 

 

 

3분 동안 못할 일이 뭐야

기습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지

다리가 끊어지고

백화점이 무너지고

한 나라를 이룰 수도 있지

 

그런데

이봐

먼지 낀 베란다에 널린

양말들, 바지와 잠바들

접힌 채 말라가는

수치와 망각들

뭐하는 거야

 

저것 봐

날아가는 돌

겨드랑이에서

재빨리 펼쳐드는 날개를

 

저 날개 접히기 전에

어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야지

도장을 찍고

악수를 청하고

한 나라를 이루어야지

 

비행기가 떨어지고

강물이 갇히기 전에

식탁 위에 모래가 켜로 앉기 전에

찬장 밑에 잠든 바퀴벌레도 깨워야지

서둘러 겨드랑이에

새파란 날개를 달아야지

 

 

 

 

 

 

 

*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어떤 친구의 말로는 3분간에 걸쳐 자기 삶이 파노라마처럼 눈 앞을 스쳐간다고 했다.

교통사고로 정신을 잃어가면서도 3분간에 걸쳐 지나온 삶이 파노라마처럼 눈 앞에 펼쳐진다고 한다.

3분이면 한 생이 지나가는 충분한 시간인가 보다.

성인이 되고 어느덧 삼십년이 흘렀다.

정말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어찌어찌 하다보니 3분 동안에 그 일들이 다 일어난 것 같다.

벌써 두 아이가 성인이 다 되어 나를 3분 뒤로 밀어내고 있다.

3분 내에 새파란 날개 달지도 못했는데 3분이 휙 지나간 셈이다.

남은 3분 혹은 2분, 아니면 1분이 얼어붙은 수치와 망각을 해동시킬 수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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