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1[이준규]

JOOFEM 2009. 10. 24. 08:54

 

 

 

 

 

 

 

 

 

 

 

 

 

 

 

 

 

 

 

 

 

 

 

 

 

 

                                                                                                             박항률

 

 

 

 

 

 

1[이준규]

 

 

 

 

문을 열었다 떨리는 문 나는 이동한다 여기에서 저기로 저기에서 여

기로 물소리 들린다 너를 그리워하며 너를 미워하며 부드럽게 그리

고 거칠게 안으로 안이 없는 안으로 그 속으로 언제나 진행하는 것

만 남는가 너는 소파에 앉아 있다 아니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

았다 비가 내린다 거짓말처럼 비가 내린다 방 안으로 역시 물은 흐

른다 어둡다 희미한 불빛이 흐른다 공기는 맑지 않다 비행기 지나가

는 소리가 들렸고 멀리 차들의 경적이 누군가를 부르는 애처로움을

가지고 들려온다 박새 한 마리 박새 두 마리 박새 세 마리가 이 나무

에서 저 나무로 이동했다 예컨대 라일락에서 향나무로 측백나무에

서 무자비하게 잘린 능수버들로 끈끈한 진액을 떨어뜨리는 가죽나

무에서 하얗고 빨간 꽃이 피는 명자나무로 명자나무에서 모과나무

로 은행나무에서 소나무로 소나무에서 버즘나무로 버즘나무에서 흰

구름으로 흰 구름에서 누런 반달로 그렇게 저렇게 박새가 그 빠른

몸짓으로 위치를 바꾸는 동안 나는 비상층계참에서 담배를 한 대 피

우며 비상층계가 무너지진 않을까 생각했다 노파 하나가 지나갔다

그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그 새의 이름은 무엇이었나 비가 내리고

있었고 비스듬한 너는 흐린 눈빛으로 흐리지만 젖어 빛나는 눈빛으

로 손짓했다 가라는 건지 오라는 건지 알 수 없는 애매한 손짓

을 하며 다시 눈을 감았다 꿈에 꿈의 안에 그 속에서 너는 흐려지고

진해졌다 나는 배회하는 나일 뿐이지만 너를 스치는 비를 정지시킬

수 있었다 나는 그 비를 눈물이라고 칭하기로 했다 언덕을 오르며

언덕 옆으로 뚫린 창들을 바라보며 그 창들의 살림과 모래알 같은

단란을 엿보며 겨울이 올 것이다 그리고 봄이 올 것이다 바람이 불

고 까치는 시끄러울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너를 보면 너를 보

았다는 것만 기억할 뿐 다른 건 없었다 더 이상 슬플 수는 없었고 덜

슬플 수도 없었으며 그저 쌀밥 같은 슬픔을 천천히 씹어 넘길 수 있

을 뿐이었다 너의 조금 젖어 흔들리는 눈빛의 물기를 국물 한 모금

이라고 생각하며 숟가락을 들 것이다 문을 지나가며 순간 그런 것들

을 보았다 나는 그 순간을 기록하지 못하고 가슴은 썩어간다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간다 나간다 나는 이동한다 여기에서 저기로 저기

에서 여기로 그리고 안을 찾아서 그 속을

 

 

 

 

 

 

 

 

* 바쁜 일상속에서도  나는 매일 문을 열고 이 방과 저 방을 드나든다.

하나는 블로그이고 하나는 카페이다.

매일 들어가고 나온다 해서 영원히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미 엠파스에서 포털사이트가 없어지는 것을 경험해서

방이 폐쇄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박새가 이 나무에서 저 나무로 옮겨다니며 자유를 누리듯이

나 또한 이 블로그에서 저 블로그로

이 카페게시판에서 저 카페게시판으로 옮겨다니며 자유를 누린다.

아니, 나를 찾아서 떠나는 여행이라고 보면 옳다.

머리 하얀 사람이 지나가고 은둔자처럼 숨어지내는 사람도 지나가며

도무지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사내가 지나가며

시선을 고정한 채 눈길조차 주지 않는 야박한 사람도 지나간다.

하지만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이 바닥에서는 그냥 스치는 바람결 같은 게다.

매일 드나드는 블로그와 카페에서 냄새를 맡게 된다.

그게 무슨 냄새이든지 그냥 자연의 냄새처럼 느껴진다.

싫다, 좋다를 느끼는 내 마음조차 자연스러운 것이고 자연의 일부이다.

매일 내 안의 나를 찾아서 블로그와 카페의 문을 여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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