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나무[신미균]
나무가 웃고 있다
자지러지게 웃고 있다
뒤로 넘어가면서 웃고 있다
징글징글하게 웃고 있다
웃다가 웃다가 허리가 끊어지려 한다
저러다 죽는 것은 아닐까
자세히 보니
새 한 마리
나무에 간지럼 태우고 있다
나무가 웃는다
바스러지게 웃는다
바삭바삭 부서진 유리조각처럼
빛을 반사하면서 웃는다
고개를 숙이고 웃는다
듬성 듬성 웃는다
자세히 보니
새가 떠나갔는데도
웃고 있다
* 내 삶의 범주 안에 들어오는 새는 과연 몇 마리일까.
얼마나 많이 들어와서 의미를 가지고 있다가 떠나감으로써 의미을 잃어버릴까.
새의 이름이 강렬하게 각인되었다가 의미를 잃고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가 되는 것은 과연 몇 마리일까.
사람들은 대개 죽으면 나무가 되고 싶다는 고백이 의외로 많다.
사람으로 사는 것보다 나무로 사는 것이 덜 괴로울 것이라는 착각속에 살기때문이다.
하지만 나무도 슬픔과 괴로움이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뿌리 내리는 곳이 어디냐에 따라 고난의 生을 살 수도 있고
새들이 의미를 가지고 놀러와서 행복한 나무가 되었다가도 새가 떠남으로 인해 슬픈 나무가 되기도 하기때문이다.
새가 떠났는데도 웃고 있기는 사람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물가에 심어진 나무처럼 충분한 자양분과 햇빛과 바람과 새의 사랑을 받는다면 나무로 살아도 좋겠지만
사막 한 가운데에 물도없이 새도 없이 매운 모래바람만 있어 괴롭다면 사막 한 가운데의 사람으로 사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웃고 사는 은혜와 감사가 가득한 세상이길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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