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킬 수 없는 것들[나희덕]
내 친구 미선이는 언어치료사다
얼마 전 그녀가 틈틈이 번역한 책을 보내왔다
『 삼킴 장애의 평가와 치료』
희덕아, 삼켜야만 하는 것, 삼켜지지
않는 것, 삼킨 후에도 울컥
올라오는 것......여러가지지만
그래도 삼킬 수 있음에 늘 감사하자. 미선.
입 속에서 뒤척이다가
간신히 삼켜져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 것,
기회만 있으면 울컥 밀고 올라와
고통스러운 기억의 짐승으로 만들어버리는 것,
삼킬 수 없는 말, 삼킬 수 없는 밥, 삼킬 수 없는 침,
삼킬 수 없는 물, 삼킬 수 없는 가시, 삼킬 수 없는 사랑,
삼킬 수 없는 분노, 삼킬 수 없는 어떤 슬픔,
이런 것들로 흥건한 입 속을
아무에게도 열어 보일 수 없게 된 우리는
삼킴 장애의 종류가 조금 다를 뿐이다
미선아, 삼킬 수 없는 것들은
삼킬 수 없을만한 것들이니 삼키지 말자.
그래도 토할 수 있는 힘이 남아 있음에 감사하자. 희덕.
* 희노애락중에서 노와 애가 마음속에 있으면 어딘가에 장애가 나타난다.
소화가 안된다든지, 잠이 안온다든지, 거식증이나 폭식증이 온다든지
난폭해진다든지, 우울해진다든지......
어떤 형태로든지 장애가 나타난다.
삼킬 수 없는 분노, 삼킬 수 없는 슬픔이 마음속에 자리잡으면
육개월이 걸릴지 일년이 걸릴지 모르게 장애에 시달린다.
내려놓으라고 아무리 말해도 그 장애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하고
용서하고 또 용서하라고 아무리 말해도 홧병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어찌보면 삶의 리비도가 너무 커서 그럴 수도 있고
자아의식이 너무 집착적이어서 그럴 수 있다.
첫째는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둘째는 기쁨이 조금이라도 있다는 것을 감사하고
셋째는 그래도 뭔가 즐거움을 주는 것이 있음을 감사하자.
감사하고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보면 분명 내려놓을 수 있을 게다.
다 용서가 되는 때가 올 게다.
친구야, 감사의 기도를 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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