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황홀한 국수[고영민]

JOOFEM 2011. 6. 2. 23:28

 

                                                       사랑, 그기다림의 끝,이란 카페에서 업어왔습니다.^^*

 

 

 

 

 

황홀한 국수[고영민]

 

 

 

 

반죽을 누르면 국수틀에서 국수가 빠져나와

받쳐놓은 끓는 솥으로

가만히 들어가

국수가 익듯,

 

익은 국수를 커다란 소쿠리째 건져

철썩철썩, 찬물에 담갔다가

건져내듯,

 

손큰 내 어머니가 한 손씩 국수를 동그랗게 말아

그릇에 얌전히 앉히고

뜨거운 국물을 붓듯,

고명을 얹듯,

 

쫄깃쫄깃, 말랑말랑

그 매끄러운 국숫발을

허기진 누군가가

후루룩 빨아들이듯,

이마의 젖은 땀을 문지르고

허, 허 감탄사를 연발하며 국물을 다 들이키고 나서는

빈 그릇을 가만히 내려놓는

검은 손등으로

입가를 닦듯,

살다갔으면 좋겠다

 

 

 

 

 

 

 

 

 

* 어릴 때는 국수며 수제비며 칼국수며

그저 밀가루로 만든 음식이 참 많았던 것 같다.

국수는 뜨거운 국물보다는 한겨울에 땅에 묻은 김장독에서

살짝 살얼음 얼은 국물을 퍼담고 후추가루 뿌리고 설탕 조금 뿌려서

김치 송송 썰어 국수에 얹어 먹으면

이거야말로 황홀한 국수였다.

다 먹고 입을 쓱 닦으면 그때부터 이가 위아래끼리 딱딱 부딪히며

등골이 오싹하고 뱃속이 얼얼해서 아랫목에 발을 집어넣지 않으면 안될 지경이었다.

가족의 발끼리 이불속에서 스킨십을 하던 그옛날이 이제 다시 돌아오지 않겠지만

그때의 황홀함은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다. 

'시와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꾸로 읽는 법[천양희]  (0) 2011.06.05
국수를 삶는[윤관영]  (0) 2011.06.04
神의 기도[김남조]  (0) 2011.05.27
가정백반[신달자]  (0) 2011.05.18
사칭(詐稱)[김왕노]  (0) 2011.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