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나무의 수사학 [손택수]

JOOFEM 2013. 5. 14. 08:37

 

                                                                                   서산목장, 용비지에서 내려다 보이는 초원.

 

 

 

 

 

나무의 수사학 [손택수]

 

 

 

 

 

꽃이 피었다,

도시가 나무에게

반어법을 가르친 것이다

이 도시의 이주민이 된 뒤부터

속마음을 곧이곧대로 드러낸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나도 곧 깨닫게 되었지만

살아 있자, 악착같이 들뜬 뿌리라도 내리자

속마음을 감추는 대신

비트는 법을 익히게 된 서른 몇 이후부터

나무는 나의 스승

그가 견딜 수 없는 건

꽃향기를 따라 나비와 벌이

붕붕거린다는 것,

내성이 생긴 이파리를

벌레들이 변함없이 아삭아삭 

뜯어 먹는다는 것

도로변 시끄러운 가로등 곁에서 허구한 날

신경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며 피어나는 꽃

참을 수 없다 나무는, 알고 보면

치욕으로 푸르다

 

 

 

 

 

 

* 해마다 스승의 날이 되면 악랄했던 스승만 기억에 남고 온순하고 착했던 스승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거 니가 쓴 시 맞어?'라고 했던 국어선생, 난쟁이 똥자루만한......

육성회비 늦게 낸다고 벌 세우던 선생

모자 비뚜루 썼다고 손바닥 백대 때리던 선생

음악 미술 체육을 미,를 주어 눈물 흘리게 했던 이상한 선생

합창대회에 '연가'를 제출했다고 강당에서 팬티바람으로 만들고 회초리를 때리던 음악선생......

그들이 치욕으로 푸르른 나무처럼 내 앞에 서있었었다.

지금은 치욕만 남아 욕을 하고 있지만 그래도 스승이었다.

 

착한 스승님은 국민학교 삼학년 담임선생님,

한때 결혼까지도 꿈꾸었던 누나선생님이다.

띠동갑쯤 되는 선생님과 회장이었던 나는 일요일에 반 문집을 만든다고 데이트....ㅎㅎ

사학년때는 매일 짜장면으로 점심을 드시는 남자선생님인데

'증정'이라고 찍힌 전과나 문제집을 내게 주시곤 했다.

플라타너스 나무 그늘이 그렇게 넓고 크낙하게 느껴졌는데 지금은 초라하게 보이는 나무들.....

학교 정문은 왜 그렇게 조그맣게 보이는지.

그립다, 선생님들.

 

 

 

 * 용이 놀다가 날아갔는지 '용비지'란 이름의 연못이다.

 

 * 서산목장이 한 풍경이다. 군데군데 소똥이 철퍼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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