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경 그림
구부러진 길 [이준관]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날이 저물면 울타리 너머로 밥 먹으라고 부르는
어머니의 목소리도 들을 수 있다.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 듯이
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이 뜨는 구부러진 길.
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을을 품고
구불구불 간다.
그 구부러진 길처럼 살아온 사람이 나는 또한 좋다.
반듯한 길 쉽게 살아온 사람보다
흙투성이 감자처럼 울퉁불퉁 살아온 사람의
구불구불 구부러진 삶이 좋다.
구부러진 주름살에 가족을 품고 이웃을 품고 가는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이 좋다.
*구부러진 길 같은 사람은 다름아닌 어머니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어머니가 생각난다.
워낙은 어머니날인데 슬쩍 아버지를 끼워넣어 어버이날이 된 오월 팔일이다.
카네이션이 잘 팔리는 날이다.
요즘은 어버이 모시고 외식을 하는 날이기도 해서 온통 길에는 차들로 붐비는 날이다.
일년에 두번 생신날과 어버이날에만 용돈을 쥐어드리는 날일 게다.
부모님한테 드리고 자식들에게 받는 날이기도 하다.
용돈 드리면 어버이 입가가 올라가고 눈가에 주름이 지고
자식들에게 선물을 받으면 내 입가가 올라가고 눈가에 주름이 질 게다.
그렇게 구불구불 사는 게 한 평생이다.
인철아, 밥 먹어라
어머니가 부르는 그 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듣고 싶은 사랑의 목소리이다.
지금은 들을 수 없어도 꼭 들어보고 싶은 어머니의 목소리이다.
'시와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무의 수사학 [손택수] (0) | 2013.05.14 |
---|---|
식구 [박제영] (0) | 2013.05.08 |
모네 씨의 수련 [김정란] (0) | 2013.05.01 |
풍경을 읽다 [이수익] (0) | 2013.04.28 |
봄비 [함민복] (0) | 2013.04.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