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사과밭엔 가지 않겠어 [정진규]

JOOFEM 2013. 6. 26. 12:32

 

 

 

 

 

 

사과밭엔 가지 않겠어 [정진규]

 

 

 

 

  슬픈 사랑의 代行이여, 서로 간절해 있으면서도 몸을 내밀 수 없는

비극을 사과꽃 필 때 사과나무 밭으로 가면 볼 수가 있지 그게 사과의

몸이야 벌들이 떼지어 날아다니면서 사랑의 가루받이를 하는 걸 볼

수가 있지 벌들이 사과의 사랑을 떼지어 약탈하고 있지 이제 사과나

무 밭에는 가지 않겠어 잔인해, 비극의 몸은 그래서 맛이 나겠지만 그

래서 싱겁지 않겠지만 비극의 풍요를 보는 게 무서워, 당신도 그동안

약탈당한 사랑의 결실을 사랑해 오셨겠지 껍질도 벗기지 않고 우적

거리셨겠지 단순한 살이 아니니까 우여곡절의 살이니까 맛이 있었겠

지 처음부터 충만이었던 사랑은 싱겁지 그런 결실을 먹어본 사람은

알지 싱겁지 그래도 사과꽃 필 때 사과밭에는 가지 않겠어 잔인해, 겁

탈당한 결실이 맛있다는 걸 알게 되는 게 무서워, 그런 사과들을 上等

品으로 비극의 아름다움을 上等品으로 팡팡 도장 찍는 세상이 무서워,

비극의 몸에 한번 맛들면 헤어나지 못하지 싱거운 게 몸에 좋다니까!

금단이라니까! 나는 알아버렸어

 

 

 

 

 

 

* 겁탈당한 비극의 몸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자주 먹는다.

커피를 마실 때마다 적도의 뜨거운 태양 아래 태양을 닮은, 빠알간 커피콩을 따는 소년소녀를 떠올린다.

싱싱한 고추를 아삭아삭 씹으면서도 농약으로 버무린 농부의 땀과 물류회사의 우여곡절을 떠올린다.

혹은 세,네배 가격으로 튀겨진 닭고기를 먹으며 밤새도록 좁은 닭장 안에서 쉴새없이 모이만 쪼다가  큼직한 살덩이가 된 닭을 떠올린다.

많은 설탕, 많은 조미료, 많은 색소, 많은 첨가물, 많은 소금,많은 농약 등으로 우여곡절이라는 절을 지나며 수행한다.

그게 몸을 위해 하는 수행이다.

그 많은 양을 먹으며 몸이여, 제발 버티어내라, 기도한다.

수행이 다 끝나고 나서야 깨닫는 게 있다.

사랑, 참 싱겁다. 참 무섭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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