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조 안흥찐빵집 [최영규]
스물네 개 한 상자에 만 칠천 원하는 안흥찐빵
그 보름달을 한 상자 샀다
둥그렇고 커다란 무쇠솥 뚜껑을 열어젖히면
하얗고 맛있는 보름달들이 가득하다
1톤 트럭 가득 실어낼 만큼
밤낮없이 보름달을 쪄내는 원조 안흥찐빵집
꼭 회의실 같은 주방 안에는
환한 얼굴의 할머니들이 둘러앉아 달을 빚는다
하얀 가운을 입고 머리에도 하얗고 이쁜 달月을 썼다
할머니들은 틈틈이 손에 묻어 있던 달가루를 탁탁 턴다
주방바닥에 하얗게 뿌려져 쌓인 달가루
그래, 원조 안흥찐빵은 일 년 열두 달
가게 안엔 하얀 달가루가 지천이고
둥그런 보름달을 내 마음껏 살 수 있는
언제나 열려 있는 달공장이다.
* 원조는 확실히 뭐가 달라도 다르다.
그래서 이 원조 안흥찐빵을 먹고 싶은데 강원도까지 가야 하고
그거 먹자고 가긴 좀 그렇다.
경주에 사년 살 때에는 황남빵을 자주 먹었다.
유일하게 가게 한곳에서만 파는데 어떤 때는 줄을 서야 한다.
요즘은 그 비슷하게 전국에서 경주빵이라고 파는데 역시 황남빵이 더 맛있다.
지금 사는 천안에는 호두과자가 유명하다.
비싸지도 않은 이 호두과자에 열광하는 건 씹는 맛이 고소한 호두가 들어있어서다.
요즘은 워낙 싼 중국산이나 미국산이 많아서인지 천안지역의 호두나무를 다 잘라버린 상태다.
두어 군데 유명한 호두과자집이 있고 그 나머지는 역사와 전통은 없는 일반 호두과자집이다.
칠십년이 되고 오십년이 되고 다 원조라 주장하지만
앞으로 백년이 흐르고 나면 백칠십년, 백오십년이 되는 원조이니 그게 그거겠다.
하지만 지금은 주인이 살아계신 동안은 원조라 해도 될 게다.
언제나 저 김 모락모락 나는 안흥찐빵을 먹어보나, 그것도 원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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