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이나 한번 먹자고 할 때 [문성해]
서너 달이 되어 전화한 내게
언제 한번 밥이나 먹자고 할 때
나는 밥보다 못한 인간이 된다
밥 앞에서 보란 듯이 밥에게 밀린 인간이 된다
그래서 정말 밥이나 먹자고 만났을 때
우리는 난생처음 밖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처럼
무얼 먹을 것인가 숭고하고 진지하게 고민한다
결국에는 보리밥 같은 것이나 앞에 두고
정말 밥 먹으러 나온 사람들처럼
묵묵히 입속으로 밥을 밀어 넣을 때
나는 자꾸 밥이 적으로 보인다
그래서 밥을 혀 속에 숨기고 웃어 보이는 것인데
그건 죽어도 밥에게 밀리기 싫어서기 때문
우리 앞에 휴전선처럼 놓인 밥상을 치우면 어떨까
우연히 밥을 먹고 만난 우리는
먼산바라기로 자꾸만 헛기침하고
왜 우리는 밥상이 가로놓여야 비로소 편안해지는가
너와 나 사이 더운밥 냄새가 후광처럼 드리워져야
왜 비로소 입술이 열리는가
으깨지고 바숴진 음식 냄새가 공중에서 섞여야
그제서야 후끈 달아오르는가
왜 단도직입이 없고 워밍업이 필요한가
오늘은 내가 밥공기를 박박 긁으며
네게 말한다
언제 한번 또 밥이나 먹자고
* 밥 먹으러 가자,고 말하는 사이는 이미 사랑이 싹트고 열려 있는 사이이다.
언제 밥 이나 한번 먹자,는 말은 사랑이 싹트려면 그 언제까지는 두고보자는 사이이다.
오래전 친구 사이라도 그간에 거래가 없이 지내온 사이라면
멀리 있는 너와 나 사이의 거리가 적당한 거리인지, 아닌지를 가늠해봐야 하는 것이다.
어쨌거나 밥을 한번 먹게되었을 때 입술이 열리는 것은
태초에 엄마젖을 빨 때처럼 온몸이 후끈 달아오르고 아, 이것이 사랑이야!라고
느껴져야 밥은 비로소 사랑이 되는 것이다.
언제 한번이 두번이 되고 세번이 되고 자꾸자꾸 사랑이 퇴적되어야
밥 먹으러 가자,는 사이가 된다.
밥도 두번, 세번이 될지도 모를 가능성을 두고 먹게 되는 것이지 함부로 먹지는 않는다.
밥이나 한번 먹자는 말은 그래서 요즘 유행하는 말로, 나, 너 좋아하니?인 것이다.
언제 밥이나 한번 먹자.
나, 너 좋아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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