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로또를 포기하다 [복효근]

JOOFEM 2014. 6. 28. 18:02

 

 

 

 

 

 

 

 

로또를 포기하다 [복효근]

 

 

 

 

 

똥을 쌌다

누렇게 빛을 내는 황금 똥

깨어보니 꿈이었다

들은 바는 있어 부정 탈까 발설하지 않고

맨 처음 떠오르는 숫자를 기억해두었다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려운 두 누나 집도 지어주고

자동차를 바꾸고 아내도

아니, 아내는 이쁜 두 딸을 낳아주었으니

남 보는 눈도 있고 하니 좀 더 생각해볼 것이다

 

직장도 바꾸고

물론 시도 쓰지 않을 것이다

제대로 쓰지도 못하면서 시인이라는 이름이 버겁기만 하고

머리털 빠지는 그 짓을

뚝심 좋은 이정록 같은 이에게나 맡길 것이다

 

내일 퇴근 길에 들러서 사올까

너무 늦은 것은 아닐까 어디서 로또를 사지

또 뭐라고 말해야 할까 똥 꿈을 꾸었다고 쑥스럽게

그건 그렇고 내가 부자가 되면

화초에 물은 누가 줄 것이며 잡초는 어떻게 하고.....

 

안 되겠다

로또를 포기하기로 했다

나는 갑부가 되지 말아야겠다

 

 

 

 

 

 

 

* 나도 로또를 딱 한 번 사본 적이 있다.

물이 찰랑거리는 꿈을 꾼 게 틀림없다.

어머니로부터 찰랑거리는 물꿈을 꾸면 복이 들어온다고 들어서였을 거다.

그런데 꽝이었다.

 

로또가게를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 왠지 행운을 거머쥔 듯 느껴진다.

아마도 좋은 꿈을 꾸어서일 게다.

꼭 당첨되어 부자가 되기를 바란다는 시선으로 그들을 쳐다보지만

오히려 로또가게의 주인이 참 좋은 일을 한다는 생각이 든다.

마치 행운을 나누어주는 덕스러운 사람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로또는 행운인데 로또를 포기하지만

아마도 시인은 시를 쓸 수 있고 화초에 물을 줄 수 있고 잡초도 뽑으며 오히려 행복할 게다.

나도 로또를 포기하기로 한다.

행운보다는 행복이 나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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