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속의 길 속의 [나희덕]
저 풀들은 홍해를 건너고 있는 것일까
갈라진 아스팔트 틈으로 풀들이 자라고 있다
길 속의 길,
길이 갈라져 풀이 난 게 아니라
풀씨가 팽창하면서
홍해처럼 길이 갈라진 게 아니었을까
키 작은 풀들 아래 개미들이 부지런히 부지런히
개미의 길을 가고 있다
길 속의 길 속의 길 속의 길 속의
어린 시절 뒷창을 열면
푸성귀를 이고 지고 장터로 가던 아낙들,
장날이면 피어나던 그 푸른 길을
창턱에 올라앉아 바라보던 어린 내가 있었다
* 지금, 내가 서있는 이 길은 내가 가고자 했던 길일까.
직장 생활 삼십년 하면서 업무가 조금씩 바뀌긴 했지만 이 길이 의도했던 길이었을까.
아주 어릴 때 나는 엔지니어가 되어 그 길을 가겠다 했는데
말한대로 이루어진다 했던가.
정말 삼십년을 같은 길을 걸었다.
다른 길에 들어서면 또 다른 세상이 열리고 그 길 또한 부지런히 가기만 하면 되는 길일까,를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그 길을 계속 가도 되는 것일까,
생각 속에 또 생각 속에......잠기고 또 잠겨본다.
다른 길을 걸었던 친구들을 보면서 저렇게도 사는구나, 했는데.
개미들은 길을 바꾸지 않고 부지런히 그 길을 왔다갔다 하긴 한다.
나도 너무 개미처럼 좁을 길을 왔다갔다 하기만 했나 싶기도 하다.
다시 창턱에 앉아 어린 나의 모습으로 돌아가 푸른 길을 바라보고 싶다.
'시와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등학교 운동장 [강우식] (0) | 2015.02.15 |
---|---|
무화과 숲 [황인찬] (0) | 2015.02.12 |
뺄셈의 춤 [이성미] (0) | 2015.02.02 |
플래카드 [신미균] (0) | 2015.01.29 |
먼 곳 [문태준] (0) | 2015.0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