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가도 가도 바깥인 집 [손택수]

JOOFEM 2017. 6. 16. 13:04








가도 가도 바깥인 집 [손택수]






당신이 가신 뒤의 일입니다

마당귀의 엉겅퀴가 그늘을 당겼다 푸는 게 보입니다

당신의 발자국 소리

기침 소리

쌀뜨물처럼 받아먹고 자란 엉겅퀴겠지요

병원이 아니라 집에서 눈을 감게 해달라 하셨는데,

효는 왜 불효가 되었을까요

혼자서 해바라기를 하던 툇마루

나뭇결엔 당신의 손 주름이 흘러들었겠지요

결과 결이 저를 쓰다듬고 갑니다

이 툇마루에 앉아 있으니

마당을 지나가는 구름이며 바람이

말년의 이웃들이었음을 알겠습니다

그 이웃들을 유산으로 물려주고 싶었던지요

당신이 가신 뒤의 일입니다

외손인 제게도 유품이 생겼습니다

저를 업고 걸레질을 하시던 툇마루가 생겼습니다

엉겅퀴가 그늘을 당겼다 푸는 걸

지켜볼 수 있는, 멀고 먼

나의

가도 가도 바깥인 집



                                       - 월간 "태백" 07' 6월호


                          









* 노인들은 대개 죽음을 앞두고 유언처럼 말한다.

- 나, 병원이나 요양원은 싫어. 집에서 눈을 감게 해 줘.

- 나, 죽거든 합장하지 말어. 그냥 바다나 강에다 뿌려 줘.

- 나, 꼭 고향 선산에다 묻어 줘. 사놓은 묘지에 묻지 말어. 묘지는 낯선 땅이여.


먹을 것은 먼저 먹는 게 임자겠지만 당신이 가신 뒤의 일은 살아남은 자의 몫이다.

집에서 장례를 치를 수 없어 결국 병원을 찾게 되고

합장이나 선산행은 자식들이 회의를 통해 결정할 일.

유언대로 꼭 이루어지진 않는다.


물론 자식들은 죽음을 앞두고 유언처럼 하는 당신의 말씀을 가슴에 새겨 놓을 게다.

친가였다면 목청을 높여서 새긴 가슴, 열어보이겠지만

쩝, 아무래도 외가인 때에는 목소리가 작게 된다.

말년에 구름이며 바람이며 툇마루가 자식들보다 나은 이웃사촌이었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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