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집 [이선영]

JOOFEM 2019. 2. 21. 22:19








집 [이선영]






남은 집은 몇 채이려나, 나 여러 채의 집들을 거쳐 왔네

크거니 작거니 높거니 낮거니 했지만

들어앉으면 달리 나설 데도 없는 나의 집이었다네

옥상에서 별을 올려다보던 집

계몽사 50권 세계동화전집이 반겨주던 집

할아버지가 벼루에 먹을 갈아 다리 가는 학을 그리던 방이 있던 집

할머니가 큰 솥에 개떡을 찌던 부엌이 있던 집

키우던 고양이가 갓 낳은 새끼들을 숨기려다 목줄에 걸려 죽고

나는 멍하니 창틀에 올라앉아 마당의 후박나무만 바라보던 집

저녁 어스름 귀갓길에 문득 노을빛 조등이 걸렸던 집

아버지에게 대들다 한동안 치마 아래로 종아리가 시퍼렇던 여대생이 살던 집

후두둑 빨간 딱지가 붙고 빚쟁이로 몇 날 며칠 눅눅하던 집

퇴직하고 이빨 빠진 아버지가 낡은 소파와 함께 음침한 정물화가 되어가던 집

그 집이 싫어서 한 남자와 도망쳐 나온 집

커다란 모기장을 사면 벽에 걸고 아이들과 한 방에서 자던 집

아이들이 자라면서 식탁이 소란스러워지고

기어코 같이 놓일 수 없게 된 수저들이 생긴 집

네 식구가 제 귀퉁이에서 각자 자기식의 평화를 지키는 집

때로 네 식구 마음 따라 문짝은 어그러지고 변기가 막히고 천장이 얼룩지는 집

제 손바닥에 옹송그리는 식구들을 하나라도 놓쳐서는 안 되는 지상의 단 한 칸

어쩌다 예전 살던 곳들을 지나칠 때면

어떤 집은 뭐 하러 또 왔냐 묻고 어떤 집은 들렀다 가라 하는데

제 들보를 갉아 먹는 슬픈 벌레를 키우지 않는 집은 어디 있으려나


                                         - 창작과 비평, 2017년 가을호






* 하루 이십사시간 중 잠자는 시간 여덟시간과 아침 저녁으로 밥 먹고 씻고 네시간이라고 치자.

하루의 절반을, 인생의 절반을 집에서 지내는 거다.

온전히 나의 공간이고 식구들과의 공간이고 나의 인생이 뒹구는 곳이다.

집은 그렇게 안온한 것만은 아니지만 희노애락이 찐하게 묻어있는 거처이다.

이느므 집때문에, 아니 집값때문에 사람들은 또 웃고 운다.

없이 살아서 좋은 집에 살지 못하고

더 없이 살아서 전셋집으로 월세집으로 전전하고

열번 스무번 이사하며 가는 집마다 애환이 서린 곳이었을 게다.

그런 곳에서 아이들은 자라고 어른이 되어 분가하고 아이들 데리고 때만 되면 찾아오는 게 집이다.

하늘에 있는 집만큼이나 평화와 안식이 있는 집이면 좋겠다.

슬픈 벌레조차 예쁘게 키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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