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새는 화분처럼 조잘거리고 [변종태]

JOOFEM 2019. 4. 23. 11:26







새는 화분처럼 조잘거리고 [변종태]






  점심시간 직전 수업시간. 아이들에게 독서를 시킨다. 종잇장 넘기는

소리만 바스락, 책상도 의자도 입을 다물고, 난데없이 14번 아이의 의

자 옹이에서 새가 운다. 누구야? 말하는 거?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

다시 5번 아이 책상의 나이테에서 새, 소리가 들린다. 22번의 책 귀퉁

이에서 새순이 돋는다. 29번 18번 9번…순식간에 천장까지 자란다.

7번 아이 의자의 등받이에서도 새가 운다. 이 녀석들, 진짜 혼나야  조

용히 할래? 아무리 목청을 돋워도 새, 소리 그치질 않는다. 아이들은

그저 묵묵히 책장만 넘기고 있다. 유리창 밖에는 구름이 떠가고 교실

에 심어진 아이들의 머리 위에서 새, 소리가 들린다. 조용히 해, 조용

히 하란 말이야. 아무리 소리 질러도 교실은 새, 소리만 가득하다.


                                      - 사이펀, 2018 가을호








* 정돈된 교실은 책상과 의자가 줄 맞춰져 있고

숨소리와 삭삭삭 연필소리, 필통 떨어뜨리는 소리......

한창 때의 나이에 배도 고프고 화분은 동영상처럼 커지는 때에

독서를 시키다니.

그 고요함 속에서 책속의 내용은 머리를 꿈틀거리게 하고

몸은 창 밖의 운동장으로 가 있고

급식 메뉴는 뭐지? 점심 먹고 축구 한 판 하까?

아니야, 옆반 칠성이를 만나야지.

온갖 자유분방한 생각이 의자를 끌어당기고 엉덩이가 흔들흔들.

새 소리가 날만도 하다.

유일하게 선생님만 폭압자가 되어 소음을 내고 있다.

학창시절의 풍경은 여전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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