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화분처럼 조잘거리고 [변종태]
점심시간 직전 수업시간. 아이들에게 독서를 시킨다. 종잇장 넘기는
소리만 바스락, 책상도 의자도 입을 다물고, 난데없이 14번 아이의 의
자 옹이에서 새가 운다. 누구야? 말하는 거?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
다시 5번 아이 책상의 나이테에서 새, 소리가 들린다. 22번의 책 귀퉁
이에서 새순이 돋는다. 29번 18번 9번……순식간에 천장까지 자란다.
7번 아이 의자의 등받이에서도 새가 운다. 이 녀석들, 진짜 혼나야 조
용히 할래? 아무리 목청을 돋워도 새, 소리 그치질 않는다. 아이들은
그저 묵묵히 책장만 넘기고 있다. 유리창 밖에는 구름이 떠가고 교실
에 심어진 아이들의 머리 위에서 새, 소리가 들린다. 조용히 해, 조용
히 하란 말이야. 아무리 소리 질러도 교실은 새, 소리만 가득하다.
- 사이펀, 2018 가을호
* 정돈된 교실은 책상과 의자가 줄 맞춰져 있고
숨소리와 삭삭삭 연필소리, 필통 떨어뜨리는 소리......
한창 때의 나이에 배도 고프고 화분은 동영상처럼 커지는 때에
독서를 시키다니.
그 고요함 속에서 책속의 내용은 머리를 꿈틀거리게 하고
몸은 창 밖의 운동장으로 가 있고
급식 메뉴는 뭐지? 점심 먹고 축구 한 판 하까?
아니야, 옆반 칠성이를 만나야지.
온갖 자유분방한 생각이 의자를 끌어당기고 엉덩이가 흔들흔들.
새 소리가 날만도 하다.
유일하게 선생님만 폭압자가 되어 소음을 내고 있다.
학창시절의 풍경은 여전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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