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그렇습니다 [김소연]

JOOFEM 2023. 9. 24. 17:31

개그콘서트 '대화가 필요해'

 

 

 

 

 

그렇습니다 [김소연]

 

 

 

 

  응, 듣고 있어

  그녀가 그 사람에게 해준 마지막 말이라 했다

  그녀의 말을 듣고 그 사람이 입술을 조금씩 움직여 무

슨 말을 하려 할 때

  그 사람은 고요히 숨을 거두었다고 했다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그녀는

  다시 그 이야기를 했고 한참이나 다른 이야기를 하다

가 또다시 

  그 이야기를 반복했다

 

  다른 말을 했어야 한다고 그녀는 여기는 듯했다

  겨우 그런 말이 그 사람과의 마지막 말이라는 것을 안

타까워하는 듯했다

  그것 때문에 그 사람의 마지막 모습을 자꾸 생각하게

되는 듯했다

 

  나는 다른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 비친 우리의 머그잔과 머그잔 속 커피에

비친 

  등불 같은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응, 듣고 있어

  응, 듣고 있어

  그녀에게 이 말을 하면서 나는 자꾸 다른 곳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먼 곳으로 가게 되었을 때  그 사람과 나는

  나란히 앉아 그녀를 안타까이 바라보며 입술을 열었다

  그 사람이 그녀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응, 듣고 있어

  그녀에게 들리든 들리지 않든

  그 사람과 나는 그녀에게 이 말을 해놓고서 기다렸다

  그녀가 한 번쯤 이 쪽을 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 촉진하는 밤, 문학과지성사, 2023

 

 

 

 

 

 

 

 

 

 

* 대화라는 것은 일방적이지 않을 때 대화라고 한다.

말하고 들어주고 말하고 들어주고.

입술은 하나인데 귀가 둘이라는 건 한마디 하고 두 마디 들으라는 뜻.

서로 한 마디도 건네지 않는다면 그건 대화가 아니다.

마음속의 마음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굳이 대화가 필요없다고?

그렇지 않다.

시선을 주고 서로의 눈을 응시하며 주고받는 대화라야 마음을 알아들을 수 있다.

응, 듣고 있어

리얼리?

 

목소리를 들려주고 눈길을 주는 대화가 필요해.

문득 케이비에스 개그콘서트에서 '대화가 필요해' 코너의 대화가 생각난다.

- 뭐라 씨부리 쌌노!

허공을 응시하는 김대희에게 신봉선이 던지는 한 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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