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우리가 사랑하는 시간은 [정호승]

JOOFEM 2025. 11. 22. 11:21

해남 미황사

 

 

 

 

 

우리가 사랑하는 시간은 [정호승]

 

 

 

 

  우리가 사랑하는 시간은

  해남 미황사 대웅전 주춧돌에 새겨진 바닷게가 집게발을

한번 살짝 들어 움직이는 시간

  들었던 집게발을 내려놓고 잠시 쉬었다가 땅끝 바다를 향

해 천천히 기어가는 시간

 

  우리가 사랑하는 시간은 

  미황사 대웅전 주춧돌에 새겨진 거북이가 슬며시 머리를 

내밀고 고개를 드는 시간

  고개를 들고 석가모니 부처님 계신 곳을 이리저리 살피다

가 수평선을 향해 천천히 기어가는 시간

 

  우리가 사랑하는 시간은

  바다로 기어간 바닷게와 거북이가 다시 발길을 돌려 천천

히 미황사 대웅전 주춧돌로 돌아가 대웅보전 기둥을 받치는

시간

 

 

                    - 편의점에서 잠깐, 창비, 2025

 

 

 

 

* 사랑하는 대상이 날마다 다른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대상은 대개 정해져 있고 다른 사랑을 찾아나서다가도 

다시 돌아와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을 지키고 나를 지키는 일이다.

물론 사진 찍는 일을 하다가 시큰둥해져서 그림 그리는 일로 턴하기도 하겠지만

사랑하는 대상이 확연히 다르다고는 할 수 없다.

사랑의 대상은 하나로 관통한다 보면 될 것 같고

늘 사랑하는 대상으로 돌아온다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천천히 가는 시간 같아도 돌아보면 무척 먼 곳을 돌아돌아 다시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마음을 움직이는 그 사랑에 변함 없음을 감사하며 사랑하다 죽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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