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겨울 산길을 걸으며[정호승]

JOOFEM 2005. 7. 23. 19:07

 

겨울 산길을 걸으며[정호승]

 



겨울 산길 어린 상수리나무 밑에
누가 급히 똥을 누고 밑씻개로 사용한
종이 한장이 버려져 있었다
나는 나를 앞질러 가는 사람들을 급히 따라가다가
무심코 발을 멈추고
그 낡은 종이를 잠시 들여다보았다
누구나 어린아이의 마음이 되지 않고서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성경 말씀이 깨알같이 인쇄된 부분에
빛바랜 똥이 묻어 있었다
누가 하느님의 말씀으로
똥을 닦을 자격이 있었던 것일까
혹시 어린 아들과 추운 산길을 가던 젊은 엄마가
급히 성경책을 찢어
아들의 똥을 닦아준 것이 아니었을까
겨울 산길을 천천히 홀로 걸으며
나를 앞질러 가는 사람들을 모두 먼저 보내고
나는 지금부터라도
어린아이의 마음이 사는 마을로 가서
봄을 맞이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였다

 

 

 



* 더러움까지 사랑할 수 있음이야말로 참된 사랑이다.
아기의 엄마는 아이의 똥이 아무리 더러워도 만지고 치우며 닦아준다. 사랑이 없으면 그리 아니할 것이다.
성경의 살아계신 말씀이 아이의 똥꼬를 닦았다고 해서 말씀이 더러워 지진 않는다.
오히려 더러움을 통해 낮춤으로 인해 높임을 받을 테다.
말씀이 사랑이 되어 온 세상을 깨끗케 하실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