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가을에 [고영민] 이젠 단풍나무가 단풍나무로만 보인다노랗게 물든 은행나무도그냥 은행나무로만 보인다예전엔 물든 나무에게서의미심장한 시상(詩想)도 보이곤 했는데이젠 그저 서 있는 나무로만 보인다그동안 나는 너무 속아왔다다 떠나버린 저 나무 주위를철없이 나 혼자만 맴돌고 있었다정작 상대는 기억도 못하는 일에혼자 미안해하고 있었다바닥을 쓸던 미화원이 빗자루를 들어 가지에 매달린 노란 은행잎을왜 털어내는지 이젠 알 것 같다그는 낙엽을 커다란 자루에 담고길가 여기저기에 무덤덤 세워둘 뿐이다그새 나는 너무 삭막해졌나그렇다면 오늘은 양손 가득 은행잎을 담아머리 위에 뿌리며 부러낙엽 샤워라도 즐겨볼까두고두고 꺼내 볼 인생 숏이라도 한 컷멋지게 찍어볼까 - 햇빛 두 개 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