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청파동을 기억하는가[최승자]

JOOFEM 2006. 3. 6. 13:28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최승자]
 
 


겨울동안 너는 다정했었다
눈의 흰 손이 우리의 잠을 어루만지고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따뜻한 땅속을 떠돌 동안엔

봄이 오고 너는 갔다
라일락 꽃이 귀신처럼 피어나고
먼 곳에서도 너는 웃지 않았다
자주 너의 눈빛이 셀로판지 구겨지는 소리를 냈고
너의 목소리가 쇠꼬챙이처럼 나를 찔렀고
그래, 나는 소리없이 오래 찔렸다

찔린 몸으로 지렁이처럼 오래 기어서라도
가고 싶다 네가 있는 곳으로.
너의 따뜻한 불빛 안으로 숨어들어가
다시 한번 최후로 찔리면서
한없이 오래 죽고 싶다

그리고 지금, 주인없는 해진 신발마냥
내가 빈 벌판을 헤맬 때
청파동을 기억하는가

우리가 꽃잎처럼 포개져
눈 덮인 꿈속을 떠돌던
몇 세기 전의 겨울을
 

 

 

 

 

 

 
* 예전에 나의 이모들은 청파동이모,신림동이모,수유리이모로 불렸다.
  지금은 다른 곳으로 이사가서 산본이모,분당이모,광주이모로 불린다.
  아주 어릴 적 가본 청파동이 기억날 리 없지만 어머니손 붙잡고 청파동을
  다녔다는 것만 기억한다. 판자촌이었을까..... 그래도 그리운 그 곳.
  위의 사진은 청파동의 어느 거리인데 그 때의 운치를 얼핏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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