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감상

뿌리내린 곳에서의 슬픔[최승호]

JOOFEM 2006. 3. 31. 23:57

 

 

 

 

 

 

 

뿌리내린 곳에서의 슬픔[최승호]


어떻게 긴 겨울을 넘겼는지 모른다.
견디려고만 했지
봄이 와도 봄에 내놓을
꽃 한 송이 준비하지 못하였다.

눈이 오면 공뺏기놀이를 하던
개와 나에게
봄은 당혹스럽게 왔다.
자목련나무는
언제 어디서
봄의 꽃들을 마련한 걸까.
럭비공만한 자목련꽃들이 햇살 속에 벌어져
향기를 토하는 것을
발걸음을 멈춘 채 개와 나는 쳐다보고 있었다.

그리고
개의 슬픔을 느꼈다.

 

 

 

 

 

 

* 2월과 3월은 참 힘겨웠다. 동장군의 살을 에이는 추위에 넋이 나갔었다.

  이제 오늘 다 정리되었다.

  15년을 충성스럽게 일하던 동료들을 떠나보냈다.

  마지막 술잔과 마지막인사가 더욱 개의 슬픔을 느끼게 하였다.

  어느 하늘 아래서 우리는 다시 만날까.

  내 수족이었던 4명이 떠나며 봄은 그렇게 당혹감을 주며 다가왔다. 3월의 마지막날,슬프다.

 


    최석윤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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